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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Aug 31. 2021

『여고생』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1)

만화 프리뷰

전자책으로도 나왔고, 레진코믹스에서 웹툰으로(화별로) 볼 수 있다.


『여고생』은 참으로 독특한 만화다. 아직 안 읽어봤지만, 작가 오오시마 토와의 다른 작품 『만화가족』에서 『여고생』의 탄생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선 이 만화는 ‘여고생’이라는 이름을 단 주제에 우리나라에서 ‘19세 미만 구독 불가’(19금)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진짜 여고생은 이 만화를 볼 수 없다(정확히는, 고등학생에게 이 만화를 판매할 수 없다). 흠… 그렇다면 이건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흔한 남성향 뽕빨물일까?


하지만 작가 오오시마 토와는 여성이고, 그는 중학생 때부터 사립 여학교를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철저한 고증!! 여고생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극사실주의 만화!”(출판사 AK커뮤니케이션즈 책소개)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다. 『도대체 여고생이 뭘 했다고』라는 만화다.



독립출판물이어서 일반 서점에는 없다. 동네책방에서 찾아보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여고생』이 19금인 이유는 “여고생의 생생한 음담패설이 특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자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여자들이 나누는 음담패설의 아슬아슬한 수위”를 잘 담았다더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애니 시나리오 회의에 참여한 작가가 이 만화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내용이 정말 가관이다(재밌다ㅋㅋ). “음담패설이라도 특히 냄새 이야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싫어해요! 금기에요! … 털 얘기는 해도 냄새 얘기는 안 합니다!”


이와 비교해서, 방금 언급한 우리나라 만화 『도대체 (…)』는 19금이 아니다. 오히려 여고생이 함부로 19금과 얽히는 세태에 도전한다. 30대 여성 작가 네 명은 ‘여고생’의 연관 검색어에 ‘몸매, 발육, 뒤태, 몰카, …’ 따위가 나오는 것에 의문이 생겨 이 만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여고생이 뭘 했다고?” 네 명의 88년생 여자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네 개의 고등학교(실업계·인문계·미션스쿨·농어촌), 같거나 다른 상황 속에서 10대를 보낸 여성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


네이버에 ‘여고생’을 검색하면 추천 키워드로 ‘짧은 교복’, ‘하의실종’이 나온다.


반면에 성인용 만화인 『여고생』은 “깨끗하고 청순한 여자들이 모인 금남의 여고”에 대한 환상을 깨부순다(출판사 조은세상 책소개). 여고생도 사람이다. 나름대로 성적인 생각·고민·문제 등을 품에 안고 있는 그들을 단순하게 순수 혹은 순결한 존재로만 대상화한다면, 이는 인간성을 무시하는 짓이다. 성과 관련하여 또래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한 주제가 있을 것이며, 지극히 사적이기도 하지만 이따끔 사회가(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도 있을 것이다.


‘성녀 혹은 창녀’라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이분법이 생각난다. 『도대체』가 여성이 ‘창녀’로 대상화되는 것을 지적한다면, 『여고생』은 ‘성녀’ 쪽을 저격하는 듯하다. 나는 친구들에게, 특히 여자 친구들에게 『도대체』를 마구 추천하고 다녔으며 여러 권을 사서 선물로도 줬다. 남자가 읽어도 좋지만, 여자가 읽으면 훨씬 더 공감이 가고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향은 다르지만 『여고생』 역시 여성에게, 그리고 여고생에게 읽으라고 권할 만한 걸출한 ‘여성 만화’가 아닐까 기대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고생』은 담당 편집자를 포함해 독자 대부분이 30살을 넘은 아저씨인 만화잡지에 실렸다. 편집자는 작가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여고생의] 감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느낌으로 그려봐 주세요.” 남성향 소녀 만화지를 콘셉트로 창간된, 후타바샤의 월간지 『코믹 하이!』에도 연재되었다. 한국의 편집자로서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이 만화의 타깃 독자는 누구인가? 여고생? 여고 시절을 추억하는 성인 여성? 30살을 넘은 아저씨? 그런데 이 중에서 여고생은 이 만화를 쉽게 읽을 수 없다. 여고생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 실렸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선 성인 만화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혼란이 정말 재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아직 『여고생』을 읽지 않았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다가온 책은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여고생』 만화책은 시리즈물로서 먼저 『여고생 Girls-High』(조은세상)가 나왔고 이어서 다른 출판사에서 『여고생 Girls-Live』(AK커뮤니케이션즈)가 나왔다. 『Girls-Live』가 19금인데, 이상하게도 『Girls-High』는 19금이 아니다. 알라딘 구매자 평점이 낮길래 살펴보니, 아무래도 한국 출판사에서 지나치게 적나라한 부분을 먹칠하거나 아예 통째로(페이지째로) 날려버리면서 자체 검열을 했나 보다. 이렇게 책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린 출판사에 돈을 쥐여주어선 안 된다. 만약 여러분이 『여고생』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부디 『여고생 Girls-Live』를 읽기를 바란다.


정말 애석하게도, 19금 만화라는 장벽이 있기에 진짜 여고생은 이 만화를 직접 구매할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참된 어른이고 주변에 아는 여고생이 있다면, 당신이 사서 조심스럽게 건네주길 바란다. 청소년에게 성인 만화를 들이미는 상황이 좀 쓰레기 같긴 하다만, 그래도 ‘과연 여고생의 눈에는 『여고생』이 어떤 만화로 보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는 걸 어떡해? (이건 못 참지!)


여기서 언급된 『여고생』 관련 정보는 이 만화에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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