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계 신병법』 I. 승전계 3항

제2계 위위구조囲魏救趙 :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하다 (1)

by 김수렴

만천과해瞞天過海에 이어서 위위구조囲魏救趙전략을 다룰 시간인데요. 본 전략의 사자성어가 중국의 춘추시대 전쟁사가 배경인만큼 고전을 소개해드리려 했으나, 독자분들의 쉽고 빠른 이해를 위해 해당 고전과 유사하면서도 우리에게 더 가까운 사례를 하나 올려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바람부터 분주했습니다. 기습적으로 남하한 그들은 서울, 인천, 대전 등의 주요 도시들을 차례대로 점령했죠. 남쪽의 낙동강 저변까지 이르는데 두달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주도하던 한국전쟁의 초반부에 연이은 승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요인들은 세 가지로 좁힐 수 있습니다. 당시 더 강한 병력을 가진 북한, 기습에 대한 정보가 없어 무방비였던 한국, 그리고 여기서 저희가 살펴봐야 할 '공격의 분산'을 통한 전술 효율의 달성이 있겠습니다.



북한은 세 단계의 분산을 통해서 남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첫 단계에선 지역과 무관하게 마주치는 유엔군과 한국군을 좌우로 몰아세우고 위아래로 감싸 섬멸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8월 초에는 낙동강까지 도달했죠. 그런데 이후 유엔과 한국의 연합군은 낙동강 이남에서 수비에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함으로써 북한의 남진이 어느정도 길게 지연되었습니다.


때문에 정비 시간 없이 긴 행군을 통해서 무기와 물자를 소모했던 인민군은 생각을 고칩니다. 연합군을 마주칠 때마다 병력을 나누기보다 계획적인 분산의 공격에로 새로 착수한겁니다. 대구, 마산, 칠곡, 낙동강 일대, 주변 영해를 타깃 삼아 동서남북 사면으로 감싸서 공략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라고 불리죠.


그러나 연합군의 처절한 수비로 결국 저지되자, 9월 초에는 아예 공격의 타깃을 4개에서 5개로 늘려 에워쌉니다. 낙동강 대공세가 시작됐죠.



예상하다시피 그들의 공성은 실패였습니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병력을 더 나누어서 공격하는 것은 도리어 인민군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좁은 경상도 땅덩어리에서 동해와 남해를 뒤로 두고 배수진을 치고 뭉쳐진 연합군의 방어 병력이 밀도가 높아진 까닭에, 경상도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모해 버린 것입니다.



또한, 연합군에게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죠. 맥아더 장군이 주도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은 오면으로 애워싸던 인민군을 향해 역으로 포위하여 잡아 먹었습니다. 무리한 공세로 지친 인민군은 격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연합군은 이 기세를 몰아서 압록강까지 전진하는데 성공했죠.




이렇게 물리적인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선 분산과 포위를 할 때 일어날 경우들과 그 안에서 최선의 수가 무엇인지 명확히 분별해야만 승세를 확실히 잡을 것입니다. 북한의 포위 좌절 사례 그리고, 북한을 포위해 남한을 구한 연합군의 '위북구남圍北救南' 사례를 통하여 포위 전략의 진정한 원리를 다음 시간에 함께 해부해 봅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