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요한 일일수록 손이 안 갈까

불안과 자기불일치 이론

by 사심가득

이상한 역설이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쉽게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일일수록 손이 안 간다.


취업 준비생은 자소서를 미루고 방 청소를 한다. 승진을 앞둔 직장인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미루고 메일함을 정리한다. 논문 마감이 코앞인 대학원생은 참고문헌 정리만 하루 종일 한다.


왜 그럴까? 바로 앞선 글에서 미루는 이유는 불쾌한 감정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일에는 어떤 감정이 붙어 있길래, 우리는 그토록 피하고 싶은 걸까?




불안: 미루기의 가장 흔한 연료

답은 불안이다.


중요한 일에는 기대가 따른다. 기대가 있으면 실패 가능성도 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능력이 의심받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실망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생각들이 불안을 만든다. 그리고 불안은 회피를 부른다.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적어도 당장은 말이다.


반면, 사소한 일 때문에 불안해지지는 않는다. 실패해도 별일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이 없다. 그러니 쉽게 손이 간다. 메일 정리, 책상 청소, 간단한 행정 업무. 이런 것들은 "했다"는 성취감은 주면서 실패의 위험은 없다. 완벽한 도피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자기불일치 이론

그런데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E. Tory Higgins)의 자기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이 답을 준다.


히긴스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여러 버전의 "나(self)"가 있다.


첫째, 실제 자기(actual self). 지금 현재의 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의미한다.


둘째, 이상적 자기(ideal self). 내가 되고 싶은 나다. 내가 꿈꾸는 모습, 희망하는 모습이다.


셋째, 의무적 자기(ought self). 내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나다. 책임, 의무, 타인의 기대가 반영된 모습이다.


문제는 이 세가지 버전들 사이에 간극이 생길 때다.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 사이의 간극은 낙담과 관련된 감정을 야기한다. 실망, 슬픔, 좌절감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나는 이렇게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이 모양이네." 같은 자조들로 이어진다.


한편, 실제 자기와 의무적 자기 사이의 간극은 초조함과 관련한 감정을 만든다. 바로 불안, 죄책감,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다. "나는 이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떡하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미루기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불일치

히긴스의 이론의 후속 연구들에 따르면, 두 가지 불일치 중에서 미루기와 더 강하게 연결된 것은 의무적 자기와의 불일치였다. 즉, 불안이라는 감정이 미루기를 촉발한다.


이상적 자기는 "되고 싶은" 모습이다. 도달하지 못해도 죄책감보다는 아쉬움에 가깝다.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여유가 있다.


반면에 의무적 자기는 "되어야 하는" 모습이다. 도달하지 못하면 의무를 저버린 것이 된다. "해야 하는데 안 했다"는 죄책감과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따라온다. 이 감정들이 너무 불쾌해서 피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미룬다.


자소서를 미루는 취업 준비생을 예로 들어보자. 그에게 자소서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다. "취업해야 해", "부모님 기대에 부응해야 해", "친구들은 다 취업했는데 나만 뒤처지면 안 돼." 의무적 자기가 그의 어깨에 잔뜩 얹혀 있다. 그 무게는 불안감을 키운다. 불안감은 그를 해야하는 일에서 회피하도록 한다.




회피는 불안을 키운다

회피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다. 미루는 순간 불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불안을 더 키운다.


회피할 때마다 뇌는 학습한다. "이건 위험한 거야. 피해야 해." 그래서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오면 불안은 더 커진다. 피하면 피할수록, 그 일은 점점 더 무서운 것이 된다.


게다가 시간은 흐른다. 마감은 실제로 다가온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불안의 재료가 하나 더 추가된다. "시간도 없는데 어떡하지." 회피가 회피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진다.




불안을 피하지 않고 다루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명심할 것은,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이다. 중요한 일에는 늘 불안이 따라오며, 불안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핵심은 불안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여 다루는 것이다. 불안이 있어도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불안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고방식을 다룬다. 바로 완벽주의다. "완벽하게 못 할 바에야 안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미루기를 만드는지, 그리고 완벽주의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문헌

Higgins, E. T. (1987). Self-discrepancy: A theory relating self and affect. Psychological Review, 94(3), 319–340.

Lay, C. H., & Silverman, S. (1996). Trait procrastination, anxiety, and dilatory behavior.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21(1), 61–67.

Sirois, F. M. (2014). Procrastination and stress: Exploring the role of self-compassion. Self and Identity, 13(2), 128–145.


이전 08화미루는 이유는 감정 관리에 실패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