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감정의 덫
사람들은 가끔 굉장히 좋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상태에서 새 프로젝트를 벌이고, 약속을 잡고,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그 순간 본인이 "내가 지금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이 사람들을 정말 만나고 싶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며칠 뒤 기분이 가라앉으면 후회가 밀려온다. 약속을 취소하고, 벌여 놓은 일을 정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후회의 원인이 그 당시 기분이 좋았기 때문임을 인지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제 내가 너무 오버했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 결정이 내가 합리적으로 내린 판단이 아니라 기분에 근거했다는 사실은 끝내 모른 채 지나간다.
그 외에도 월급 들어와서 기분 좋은 날 충동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고 다음 날 후회한 경험,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다음 약속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오버했다며 한숨을 쉬어 본 경험. 우리는 그것을 "어제 들떠서 그랬다"고 정리하지만, 들떴기 때문에 판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감정이 판단을 흐린다고 말할 때 그 감정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린다. 실제로 화가 났을 때 한 말을 후회하고, 우울할 때 내린 결정을 의심한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이 따라붙는다. 부정적 감정은 위험하고, 긍정적 감정은 안전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사회심리학 연구는 이 전제에 반박한다. 긍정적인 기분도 똑같이, 때로는 더 심하게 판단을 왜곡한다. 그리고 더 까다로운 점은, 긍정적인 기분 속에서는 우리가 그 왜곡을 왜곡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적어도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하고 의심이라도 한다. 그러나 기분이 좋을 때는 그 의심조차 들지 않는다.
200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의 운켈바흐(Unkelbach)와 포가스(Forgas) 연구팀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짧은 영상을 보여주어 긍정적, 중립적, 또는 부정적 기분을 유도한 뒤, 화면에 빠르게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그 사람이 무기를 들고 있는지 아닌지를 즉각 판단하게 했다. 일부 인물은 터번을 쓴 무슬림이었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터번을 쓴 무슬림이 무기를 들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된 실험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의 참가자들에게서 고정관념이 유독 더 발현되었을까? 즉, 어떤 조건의 참가자들이 터번을 쓴 무슬림들이 무기를 들고 있다고 판단했을까? 기분이 나쁘면 고정관념에 더 치우치지 않을까?
결과는 우리의 직관과 반대였다. 긍정적인 기분이 유도된 참가자들이 터번을 쓴 무슬림을 향해 더 자주, 더 빠르게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반면 부정적인 기분이 유도된 참가자들은 오히려 고정관념에 덜 휘둘렸다. 기분이 좋은 사람이 더 관용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직관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였다.
연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기분이 좋을 때 우리의 뇌는 그것을 "지금 안전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굳이 정보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머릿속에 이미 저장된 익숙한 틀, 즉 고정관념과 직관에 더 쉽게 의지한다.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정보를 더 촘촘히 살핀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 감정을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과 달리, 적어도 판단의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 감정이 더 신중한 사고를 만든다.
진화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설계다. 안전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위험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쏟는 것. 문제는 현대 사회의 판단들이 진화가 가정한 "안전한 상황"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새 프로젝트를 수락할지, 큰돈을 쓸지, 누군가와 손을 잡을지 등이 안전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박사과정 시절, 처음 만난 연구실 동료와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한 적이 있다. 연구 관심사도 비슷하고, 대화의 호흡도 맞고, 그 자리의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그날 우리는 즉석에서 새로운 콜라보 프로젝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둘 다 진심이었고, 둘 다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본업이 바빠졌고, 프로젝트는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됐다. 그때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서로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지."
그 일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했던 약속은 사실 프로젝트의 가치에 대한 냉정한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날의 분위기, 대화의 즐거움, 서로에 대한 호감이 만들어낸 결정이었다. 들떠 있었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고, 들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들떠 있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그로부터 한참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후회는 했지만, 후회의 진짜 원인까지 가닿는 데에는 그렇게 오래 걸렸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이 정도다.
긍정적인 기분에 들떠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마치 맑은 날 운전대를 가볍게 잡는 것과 같다. 시야가 좋으니 위험이 없을 거라고 가정하고, 주의력을 낮춘다. 그러나 사고는 종종 그런 순간에 일어난다. 비 오는 날에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쥐지만, 화창한 날에는 그러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릴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날, 자신감이 차오르는 날,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날에 우리는 더 자주 자신의 판단을 신뢰한다. 그 신뢰가 어디서 왔는지는 묻지 않은 채로. 그래서 정작 위험한 순간은 우리가 가장 정신이 또렷하다고 느끼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Unkelbach, C., Forgas, J. P., & Denson, T. F. (2008). The turban effect: The influence of Muslim headgear and induced affect on aggressive responses in the shooter bias paradigm.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4(5), 1409–1413.
Forgas, J. P. (1995). Mood and judgment: The affect infusion model (AIM). Psychological Bulletin, 117(1), 3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