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를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유를 찾아 떠돈다

by 사심가득

이번 글은 한 독자님의 댓글에서 영감을 받았다. "가끔 왠지 모를 불안감과 압박이 찾아올 때가 있다." 라는 댓글에 개인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건 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특히 신경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이 불안의 까다로운 점은 "왠지 모를"에 있다. 즉,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원인이 없는 감정을 그냥 두지 못한다. 불안이 먼저 찾아오면, 뇌는 그 불안에 어울리는 이유를 사후적으로 갖다 붙인다. 그래서 같은 불안이 어떤 날은 미래에 대한 공포가 되고, 어떤 날은 직장에서의 자기 의심이 되고, 어떤 날은 애인에 대한 서운함이 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하나인데, 그날 가장 취약한 곳에 달라붙어 이유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이 불안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이 "왠지 모를" 불안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더 나아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Why"를 그럴싸 하게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대부분 틀렸다

1977년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자 니스벳(Nisbett)과 윌슨(Wilson)은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자기 판단의 이유를 설명할 때, 그 설명은 실제 원인을 정확히 반영하는가?"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들을 검토하고(메타 리뷰), 직접 실험도 수행했다. 그중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품질의 상품(예컨대 스타킹) 여러 개를 놓고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 고르게 했다. 사실 상품들은 모두 똑같았다. 다른 점은 오직 놓인 위치뿐이었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오른쪽 끝에 놓인 상품을 유독 많이 선택했다. 사람이 진열된 물건을 볼 때 마지막에 본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최신 효과)이 작동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연구자들이 "왜 그것을 골랐느냐"고 물었을 때, 참가자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촉감이 더 부드러워서요", "색이 더 좋아 보여서요", "품질이 달라 보여서요." 실제로는 위치 때문이었는데, 단 한 명도 "오른쪽에 있어서 골랐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면서도,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서 자신 있게 설명한 것이다.


니스벳과 윌슨은 이 현상을 더 넓은 맥락에서 분석했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원인, 자기 감정의 이유, 자기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때, 실제로 머릿속에서 일어난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면, 이유는 아마 이것일 거야"라고 추론한다. 즉, 진짜 원인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원인을 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것이 진짜 원인이라고 믿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를 견디기 못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그 이유를 가져다 붙이려고 한다. 이유가 생기면 다를까? 이유가 생겨도 불안감은 여전하기에 문제다.


게다가 그 이유를 갖다 붙이는 과정에서도 고난이 따른다.




불안감이 다른 일상으로까지 번진다

불안의 가장 까다로운 특성 중 하나는 가만히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찾아온 불안은 자기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면 가장 가까운 관계 쪽으로 번진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투영 또는 투사(projection)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내 안의 불편한 감정을 상대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것이다.


예컨대, 하루 종일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한 날, 애인의 답장이 평소보다 조금 늦는다. 보통 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인데, 그날따라 유독 신경이 쓰인다. "요즘 나한테 소홀한 건 아닌가", "나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가." 상대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 해석만 달라진 것이다. 불안이 먼저 존재했고, 그 불안이 관계라는 가장 민감한 영역에 달라붙어 의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때로는 특별히 잘못된 일이 없는데도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유독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김없이 연인에게로 향했다. 상대의 말투가 평소보다 짧으면 서운했고, 연락이 뜸하면 "나를 적게 사랑하나"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연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면의 문제였다. 불안이 먼저 있었고, 그 불안이 가장 취약한 곳에 달라붙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왜 불안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떠오른 답은 "연인이 요즘 소홀한 것 같아서"였다. 니스벳과 윌슨의 스타킹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촉감이 더 부드러워서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것과 같은 구조다.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뇌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갖다 붙인 것이다.




불안의 진짜 위험은 불안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불안감을 잘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안 자체가 아니라, 불안이 가짜 이유를 달고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가짜 이유를 진짜로 믿으면 엉뚱한 곳을 고치려 한다. 관계가 문제가 아닌데 관계를 의심하고, 직장이 문제가 아닌데 이직을 고민하고, 능력이 문제가 아닌데 자기를 탓한다. 불안의 출처를 모르는 채로, 불안이 만들어낸 해석만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지난 글에서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판단의 출처를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이야기다. 불안할 때도 우리는 그 불안의 진짜 출처를 모른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감정이 먼저 오고 이유는 나중에 붙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서를 뒤집어 기억한다. 이유가 먼저 있었고, 그래서 감정이 따라왔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불안의 진짜 출처는 무엇일까? 다음 글에서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정확히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것을 직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루려 한다.




참고문헌

Nisbett, R. E., & Wilson, T. D. (1977). Telling more than we can know: Verbal reports on mental processes. Psychological Review, 84(3), 23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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