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안은 '해야만 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by 사심가득

지난 글에서는 불안에 대해 다루었다. 불안은 이유 없이 찾아오고, 우리 뇌가 그럴듯한 이유를 나중에 갖다 붙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연인과의 관계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실은 내 안의 불안이 관계에 달라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럼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안의 '진짜' 출처는 어디인가?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히긴스(E. Tory Higgins)가 이 질문에 하나의 프레임을 제시했다. 자기 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이라는 이름의 이 사회심리학 이론은, 우리 안에 '나(self)'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actual self, 지금의 나를 말한다. 이는 현재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인식에 해당한다. 직장에서의 내 위치, 통장 잔고, 가족 안에서의 내 역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 좋든 싫든,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뜻한다.


두 번째는 ideal self, 되고 싶은 나다. 내가 꿈꾸는 모습, 희망하는 미래의 나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일을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의무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다.


세 번째는 ought self, '되어야 하는' 나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가깝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이루어놓았어야지", "가장으로서 이만큼은 해야지", "같이 입사한 사람은 벌써 진급했는데." 처럼. 여기에는 내가 세운 기준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가족, 사회, 또래 비교에서 생겨난 기준에 근거한다.


히긴스에 따르면, 지금의 나(actual self)와 이 두 가지 기준 사이의 간극이 서로 다른 부정적 감정을 만들어낸다.




같은 간극, 다른 감정

되고 싶은 나(ideal self)와 지금의 나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 우리는 우울해진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현실은 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고, 여유로운 삶을 꿈꿨는데 빠듯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망, 허탈, 자기 비하. 히긴스는 이것을 낙담 관련 감정(dejection-related emotions)이라고 불렀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무력감을 말한다.


반면, 되어야 하는 나(ought self)와 지금의 나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하는데", "같이 시작한 사람은 이미 다음 단계에 있는데." 이것은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다. 해야 하는 것을 못 하고 있다는 압박이다. 초조, 죄책감, 두려움. 히긴스는 이것을 초조 관련 감정(agitation-related emotions)이라고 불렀다. 의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같은 '나'인데, 어떤 기준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이 나온다. 우울한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이유도, 불안한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의 출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나이면"이라는 말의 무게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유독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히긴스의 이론으로 보면, ought self가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되어야 하는 나의 기준이 끊임없이 올라간다. SNS에서 보이는 타인의 성과, 부모님의 기대, 같은 직급의 직장 동료와의 비교.


이것들이 우리의 ought self를 매일 조금씩 키운다. 문제는 actual self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기준은 점점 올라가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생겨난다. 이 간극이 벌어질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 막연한 압박감,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찾아온다. 지난 글에서 다뤘던 "왠지 모를 불안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직시하면 달라지는 것

그렇다면 이 간극을 아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까? 히긴스는 그렇다고 답한다. 불안을 줄이려면, 불안 자체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불안이 어떤 간극에서 오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지금 되어야 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거리 때문에 불안하다"까지 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불안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안의 원인을 인식하게 되면 지난 글에서 말한 것처럼 불안이 엉뚱한 곳에 달라붙는 일이 줄어든다. 관계를 의심하거나, 자기를 탓하거나, 회사 상사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대신, "아, 이건 내가 세워놓은 기준과 지금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구나"라고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면, 그 기준 자체가 이성적인지도 판단해볼 수 있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이 정말 내가 만들어낸 기준일까, 아니면 근거가 없고 비합리적인 기준인 걸까? 되어야 하는 나(ought self)가 진짜 내 안에서 온 것이 맞는지 의심해 보는 것. 그것이 불안을 다루는 첫 번째 단계다.


'나도 나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는지, 그 기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안의 출처를 아는 것은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안과의 관계를 바꾸는 일이다.




참고문헌

Higgins, E. T. (1987). Self-discrepancy: A theory relating self and affect. Psychological Review, 94(3), 31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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