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도서관에서는 상호대차 가능하도록 다 처리해줬어요!"
리모델링으로 도서관이 휴관에 들어가면서 이용자에게 다량의 책을 장기대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체 대출가능권수를 초과하기 때문에 상호대차(다른 도서관의 책을 가까운 도서관에서 받아 보는 서비스)가 불가하다. 이 사실을 대출자에게 공지하고 있음에도 처음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발생했다. 이용자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멀리서 이곳까지 대출하러 오지 않았을 거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용자가 언급한 도서관에 문의해보니 그런 일은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이용자는 "그럼 제 이야기 들어서 알겠네요?"라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본인 역시 스스로가 악성민원인임을 아는 것이다. 이용자는 본인이 교통비를 들여가며 갔음에도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도서관까지 오는 데 소요된 교통비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용자가 요구한 돈은 삼만 원. 기름값과 톨게이트 비용을 계산해도 이만 원이 되지 않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용자는 삼만 원을 요구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담당자가 이용자의 계좌에 이만 원을 입금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책은 천천히 반납해도 되죠?"
책을 대출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으면서 이용자는 아무렇지 않게 질문했다. 담당자는 최대한 빨리 반납해달라고 했지만 다음날 이용자는 또 아무렇지 않게 대출기간을 연장해달라며 도서관으로 전화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일평생 만날 일 없는 낯두꺼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노예로 사는 것과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를 빼놓고 살아야 악성민원인에 대응하며 살 수 있다. 책 찾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더니 자신은 그런 거 배울 필요가 없다며, 그럼 너네는 데스크에 앉아서 대출·반납만 할 거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휴대폰 알림이 계속 울리고 키패드 소리가 나서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너네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소리를 지른다. 알고보니 직원이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꿔준 걸 자신이 그 전에 해둔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소음은 느끼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없이 씩씩대며 사라졌다.
한여름에 에어컨을 꺼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도서관에서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하소연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본인은 두꺼운 긴팔 옷을 입고도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지만, 근처에 반팔 옷을 입은 남자 이용자들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덜 부는 자리로 옮겨달라고 했더니 사무실에 올라가 "직원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도서관 일이 좋았던 건 책을 만지는 걸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일이 잘못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서관에도 악성민원인은 존재한다. 강도로 따진다면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접했던 민원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
내가 놀랐던 건 너무 쉽게 사비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이었다. 대학에서 근무할 때는 민원인이 극성을 떤다고 해도 학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일관적인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고성과 험한 말을 듣더라도 방침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인 사비로 해결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원인뿐만이 아니다. 한 부만 받는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담당자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슬쩍 신문 몇 부를 더 보내던 신문사가 추가로 보낸 신문의 구독료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결국 추가 구독료도 담당자가 부담하기로 했다. 거래를 끊고 싶지만 도서관에서 이용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신문들이 정해져 있으니 거래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공공기관의 악성민원이 도서관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정말 현대판 노예가 되는 것일까? 왜 공무원들은 악성민원인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일까? 악성민원인들이란 이미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것이 학습된 무기력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나름의 자기보호방식인지 잘 모르겠다. 공무원처럼 민원인을 대하는 법을 배우기에는 근무기간이 너무 짧다. 인생 첫 공공기관에서의 근무가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