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어떤 꿈을 꿨나요?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

by NULL


시에라는 자신이 전보다 더 쇠약해졌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 코앞에 닥친 죽음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저는 이겨낼 거예요.”라고 힘없이 속삭였다. 태미는 터져 나올 듯한 울음을 억눌렀다.

파렐 박사는 시에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파렐 박사는 엄청난 사랑과 배려가 그 방에 가득하다고 말하면서 시에라에게 물었다.

“시에라, 당신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나요?”

닭똥 같은 눈물이 시에라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태미는 딸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얼마 있다가 파렐 박사는 시에라에게 최근에 꿈을 꾼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네, 이상한 꿈을 꿨어요. 늘 이상한 건 아니에요. 가끔 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고요.”

시에라가 답했다. 파렐 박사는 질문을 계속 이어 나갔다.

“시에라, 혹시 꿈에 계속 보이거나 꿈속에서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나요?”

한참 정적이 흘렀다. 시에라는 눈을 반쯤 뜬 상태로 파렐 박사의 어깨너머를 훑어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 9장 남겨진 사람들에게 中




“새로운 약도 추가하고 기존 약의 복용량도 늘렸잖아요. 어땠어요?”

“확실히 우울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의사는 내가 하는 말들을 빠짐없이 메모하기 위해 서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근데… 신경안정제를 처음 처방 받았을 때도 설명을 들었는데 복용량을 늘려서인지 잠에서 깨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일어나려는 시도를 오십 번쯤 반복하다가 체념한 채로 누워있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냥 깰 때까지 기다려요. 복용량을 늘렸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사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동생은 가위에 눌린 게 아니냐고 하던데 가위랑은 달랐어요. 물론 중간에 꿈을 꾼 적도 있지만 이건 꿈도 아니었구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통화기록이 없었어요. 아빠가 방에 들어와 이불을 덮어주고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의식이 분명히 깬 상태에서 종소리가 들렸어요. 종소리가 날 만한 곳이 없는데 말예요. 이런 걸 환청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내 말을 듣고 있는 의사의 얼굴에 평소와 다른 긴장이 떠오르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해하고 있는 대로 약 복용량을 늘려서 나타나는 현상이 맞아요. 수면 효과가 있는 약인데 의식은 깼는데 몸은 아직 깨지 못해서 흔히 가위라고 말하는 것처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 있어요. 의식이 깨어 있다보니 꿈과 현실이 혼동되고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한 꿈을 꿀 수도 있어요. 약한 정도의 환각이나 환청인 거죠. 그건 약을 줄이면 해결되는 문제예요. 불편하면 약을 줄여야 하는데,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면 감수해야 하구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애초에 약 용량을 늘렸으니 자연스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나는 큰 고민 없이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의사는 늘 그렇듯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 병원에 오라는 말을 한 후 컴퓨터에 처방전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의식과 몸의 각성 상태가 불일치하고, 환청이나 환각을 보는 일이 계속 됐다. 약을 줄이지 않기로 한 건 그 정도를 복용해도 두통이 완전히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약을 더 먹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환청과 환각으로 인한 수면장애 때문에 어느 정도의 두통은 감수하기로 하고 이 정도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잦게 찾아오는 졸림과 의식과 몸의 각성 상태 불일치로 인한 시간 낭비, 외출한 부모님이 보인다거나 다른 방에 있는 남동생이 내가 있는 방에 찾아와 대화를 하는 환각으로 수면장애가 심해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환각에 대응한다고 내가 한 일은 고작 아무짝에 쓸모없는 방문 닫기뿐이라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신경안정제 복용을 줄여보기로 했다.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두통과 각성상태 불일치의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1mg씩 먹으며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주말에 해야 할 또 다른 시도는 식욕촉진제 복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일이었다. 스트레스 상태가 안정화되면서 허기를 느낀다든가 스스로 간식을 챙겨먹을 수 있는 정도의 단계에 접어들어 굳이 식욕촉진제 양을 늘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자체 판단으로 늘리지 않았는데, 의사가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라고 다시 권했다. 하지만 굳이 약을 먹어 식욕을 돋워야 될 만한 상황은 없었다. 이 약 자체가 나에게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해서 가급적 의사의 지시를 따르려고 했지만 식사에 대한 거부반응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주말이 되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게 되자 나는 다시 스스로 식사를 챙기지 않게 되었고, 허기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거참 테스트하기 딱 좋은 날이네.’


아침에 약을 복용하고 한 시간이 지났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식욕이 생기거나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테스트를 위해 점심이나 저녁까지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약을 한 번 더 복용하고 다시 한 시간이 지났다. 유의미한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 식욕촉진제를 먹으면 밥을 허겁지겁 먹게 되는 걸까? 정상적인 반응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의사가 원하는 반응도 모르겠다. 유의미한 반응이 없었다고 하면 의사는 뭐라고 할까? 이번에는 세 배로 먹어보라고 할까? 아니면 다른 약으로 바꿔 처방할까?




톰의 나이나 신체 조건에 비춰 볼 때, 그의 몸이 연명 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간호부로 가서 “톰에게 시간을 좀 벌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Ⅳ 항생제와 수액을 투여하면 될 거예요.”라고 지시를 내렸다. 톰의 담당 간호사였던 낸시는 호스피스 버펄로에서 오래 근무한 간호사였다. 나는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너무 늦었어요. 그는 곧 죽을 거예요.”

“아, 정말요?” 내가 물었다.

“네, 톰은 계속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꾸고 있는걸요.” 낸시가 답했다.

나는 불신과 반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교 수업에서 그런 걸 배운 기억은 없는데요.”

낸시는 주저하지 않고 받아쳤다.

“이봐요, 젊은이! 땡땡이를 좀 자주 쳤나 보군요.”

-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 프롤로그 中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1,400명의 환자와 그 유족과 대화하고 관찰한 결과를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임종 전 경험’에 대한 보고서다. 우리는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살릴 수 없는 환자에 대해서는? “우리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환자와 가족들은 쫓겨나듯이 보따리를 들고 병원 밖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합병증과 줄일 수 있는 고통, 나에게는 이제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만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방치된다. 왜? 어차피 죽을 거니까. 저자 크리스토퍼 커는 환자를 좋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까지가 의료인의 의무라고 말한다. 의사로서 과학적으로 근거를 내놓기 어려운 일에 이토록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죽어가는 환자를 방치하지 말라. 그는 이 메시지를 모든 의료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따르면 연구기간 동안 80% 이상의 말기 환자들이 임종몽이나 임종시(말기 환자가 생을 마감하기 수일 전이나 수주 전부터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꿈이나 환시)를 최소한 한 번 이상 경험했다고 한다.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임종몽과 임종시의 빈도수나 등장인물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고인이 등장하는 꿈은 사망의 전조를 보여 주는 예지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환자들이 고인을 보면서 느끼는 위안의 강도를 점수로 매겼을 때 5점 만점에 4.08점이라는 평균값이 나왔다. 살아 있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위안의 강도는 그 평균값이 5점 만점에 2.86점이었다. 위안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장 많이 보고된 임종 전 경험은 고인이 된 친구나 친인척과 관련된 내용(72%)이 가장 많았고, 생존해 있는 친구나 친인척, 죽은 반려동물이나 동물, 과거의 의미 있는 경험, 마지막으로 종교인과 관련된 내용이 그 뒤를 이었다. …(중략)… 놀랍게도,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관계, 그리고 일상생활의 소박한 행복이 담긴 순간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는 것으로 밝혀졌다.

-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 3장 병상에서 바라본 세상 中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보던 의사의 긴장한 눈빛이 떠올랐다. 수차례 면담하면서 처음 본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가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겪었다고 생각한 걸까? 약 때문이라는 그녀의 설명은 분명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아주 만약의 가능성 또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자살 위험도가 높은 환자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자연사가 아닌 경우, 사고사나 자살인 경우에도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겪을까? 책에는 그런 케이스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온 환자들이 연구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자살은 용서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통해 생전의 고통을 덜어내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는 의미라면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저자는 책에서 임종몽은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한다. 모든 꿈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에 대해 임종몽에서만큼은 잘못되었다고 기존 이론을 부정한 것이다. 환자가 임종몽을 통해 마음에 평안을 얻고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사고사나 자살의 경우에도 임종몽이나 임종시를 통해 좋은 죽음을 맞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흔히 주마등이라고 말하는 찰나의 순간들도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의 의미라면 임종몽이나 임종시가 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자의적 결론을 내렸다. 가능하면 모두가 행복한 게 좋으니까.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죽기 직전에만 소박한 삶들이 진정한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지 말고 우리 인생에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에서 그걸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작은 행복들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데, 등받이쿠션을 사도 정말 작게만 행복해질 뿐 우울감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 거짓말인 것 같다. 살면서도 행복하고 싶어서,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마약을 찾는 게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마약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수술 등을 통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 받은 적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약을 먹는 것과 얼마나 다른 일인지 모르겠다. 법망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인 걸까?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 지금은 딱 죽지 않아도 되는 만큼인 것 같은데.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믿었다면, 또 지겹도록 다른 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죽음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게 있어 참 다행이다. 남은 자들이 죽은 자의 죽음을 인정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가 ‘죽음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죽음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내내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를 읽은 후, 죽음의 의미란 죽은 자가 고통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좋은 곳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죽은 후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p.s.

글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방치하지 말라.'는 크리스토퍼 커의 메시지가 불쑥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환자로서 우리도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문득 든 생각을 추가로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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