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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an 24. 2022

꽃이 이르게 피기 시작했다

  비교적 무던하게 넘어갔던 코로나 백신 1차 접종과 달리 2차 접종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다. 접종부위의 통증이 열흘을 넘겼고 가려움증이 동반됐다. 미열과 몸살로 결국 타이레놀 한 알을 삼켜야 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고양이가 된 듯 아주 길고 오랜 잠을 자는 일은 현재진행중이다.


  백신 접종과 맞물려 터진 정치권 이슈로 모 후보의 막말을 유튜브 쇼츠로 찾아보는 것에 재미가 들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쉽게 조바심이 나는 성격인데 백신이라는 핑계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몇 주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별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인생은 고작 며칠의 휴식으로 깨어질 만큼 연약하지 않다.




  며칠 전 진료에서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았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무언가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며칠 전부터 들어요."


  의사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기뻐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후 휴대폰에 사람인 앱을 깔고 휴면 계정을 살리고 채용공고를 살펴봤다. 두 번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어째서 한순간에 돌변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몇 번이고 반복됐던 일이 또 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러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하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


  약을 끊지 못하면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할 거라는 혼자만의 믿음도 서서히 희석되고 있다. 약을 먹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이제는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 곳에 너무 쉽게 지원서를 제출했다. 되든 말든 그건 추후에 결정될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사회로 나갈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긋지긋했던 인간관계와 끝없이 쌓여가던 일거리들. 그 속으로 나는 다시 걸어들어가고 있다. 아니 이제는 나를 받아주기는 할까를 염려해야 할 처지가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기죽지 않으리라. 이 정도에 기죽을 거라면 애초에 회사를 뛰쳐나오지도, 복귀 제안을 거절하는 패기도 보여주지 못했겠지.


  마음 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꽃길을 펼쳐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마음을 먹었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사실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돌아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고 스스로를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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