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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an 03. 2022

삼시세끼라는 폭력

  그날은 아침부터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늘 아빠가 뇌절 잔소리를 한다고 짜증을 냈지만 그날은 엄마가 그러고 있었다. 딱히 끊어낼 컨디션이 아니어서 그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러 복합적인 집안일들과 감기, 저질체력의 하모니로 몸상태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음에도 약을 최소한으로 먹고 버텨보려던 게 실수였다.


  "제발 밥 좀 먹어! 어린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밥 먹으라고 쫓아다녀야 돼!"


  아빠를 향했던 화살은 나에게 날아왔다. 어제 저녁에 약을 먹고 잠든 후 간식만 깨작댔으니 저녁을 건너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통 때문에 기운도 없었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의 난데없는 짜증으로 입맛이 싹 달아났다.


  "배가 고프면 내가 알아서 챙겨먹는다고! 어린애도 아닌데 왜 자꾸 밥 안 먹는다고 뭐라고 그래!"


  그날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출출해지면 방에 있던 약과를 깨작거렸다. 아빠가 가져다준 사과와 귤을 마지못해 먹었고 유동식 캔 음료는 손도 대지 않았다. 밥을 안 먹는 게 이렇게 죄인 취급 받을 일인가. 서러웠다.




  "난 원래 밥을 잘 안 먹는다고! 그만 좀 뭐라고 해!"

  "먹지마! 너 안 먹으면 엄마도 안 먹을거야! 엄마도 원래 잘 안 먹어!"

  "엄마가 잘 안 먹긴 뭘 잘 안 먹어! 맨날 먹으면서! 의사가 원래 잘 안 먹는 사람인데 엄마, 아빠가 자꾸 먹으라고 그러니까 나까지 안 먹는 걸로 걱정하게 된 거래. 이것도 가스라이팅이야!"


  나는 엄마가 밥을 먹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방문을 닫았다. 분명히 몇 시간 못 가 엄마는 밥을 먹었을 것이다. 엄마는 수 년 전 위암으로 위 절제술을 받은 뒤로 조금씩 나눠서 먹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배가 고픈 걸 견딜 수 없는 사람, 먹어도 좀처럼 살이 붙지 않는 사람, 욕심 내서 먹으면 배탈이 나는 사람, 그게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반항하고 있다. 나도 이제 지쳤다. 부모님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한계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일평균 식사량은 1.5인분 정도였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먹지 않을 때도 많았다. 몸무게를 잘 재지 않는 편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평균적인 몸무게보다 빠지긴 했어도 아마 퇴사 직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빠졌다면 아마 운동 부족에 따른 근손실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무엇보다 빠졌다한들 지금 몸무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적게 나가는 몸무게도 아니다. 나는 내 기준에서 그렇게 안 먹는 편은 아니다.


  부모님의 염려 때문에 몇 달 전까지도 식욕촉진제를 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많은 양을 먹어도 효과는 줄어들었다. 의사는 우울증 때문에 식욕이 떨어진 게 아니라 원래 적게 먹는 편이기 때문에 약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저 스스로 조금 더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식욕촉진제는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안 먹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부모님이 자꾸 안 먹는다고 걱정하시니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는 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먹는 양을 계산하고 집착하게 되었지? 나도 모르게 세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남매 중 먹지 않는 걸로 잔소리를 듣는 건 나뿐이다. 회사에서 말랐다는 소리를 듣다 지쳐서 "저희 집에서는 제가 제일 뚱뚱해요."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실제로 남들이 살 빠져서 부모님이 걱정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돌아오는 말은 "살 안 쪘는데?"였다. 내가 살이 빠질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셨다는 의미다.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내 식사는 관리 대상이 됐다. 나보다 마른 여동생이나 엄마도 아니고, 하루에 거의 한 끼를 먹는(물론 한끼에 많이 먹는다) 남동생도 아니고, 내가 됐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배가 고프면 알아서 챙겨먹는다. 방금도 혼자서 삼계탕과 김치에 밥 한 그릇 뚝딱 하고 돌아왔다.


  아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장녀 콤플렉스의 부작용일 것이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먹고 싶을 때만 먹는 동생들을 대신해 나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먹고 먹으라고 할 때 얌전히 앉아서 먹는 착한 딸로 자랐다. 이제는 나도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으니 그게 갈등이 된다. 항상 잘 먹던 딸이 안 먹기 시작한 것이다.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지 않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계속 해서 먹을 것을 갖다주며 먹으라고 강요하는 친절함이 폭력이다. 나도 먹고 싶을 때는 먹는다. 쓰러질 때까지 굶고 있지 않는다. 나는 먹는 것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남아있기는 한 건가.


  방역패스를 받으면 도서관에 가야겠다. 이제 더 이상 집은 내 숨통을 트여주지 않는다. 이런 날 나를 받아줄 도서관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나가야지. 나가야지. 스스로의 자유를 찾아서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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