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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Mar 17. 2022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서울에 간 친구가 와서 서울말 쓰면 재수없지 않아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던 중 서울 지하철에서 "여보세요." 한 마디에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는 누군가의 경험담을 시작으로 이른바 '서울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눈치를 살폈다. 일 년 반 동안 있으면서 내 억양에도 조금씩 사투리가 묻어나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나를 겨냥한 말은 아니겠지?


  "친구가 그러면 그럴 수 있죠."


  내가 서울살이를 오래 했다는 걸 아는 직원 한 명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 친구가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사투리 억양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내 친구들은 다들 착해서 그런지 한 번도 나에게 재수없단 말을 한 적이 없다. 도리어 서울에서 어떻게 사투리 억양이 하나도 없냐는 질문을 무수히 많이 들었다. 간혹 내가 억지로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약직들은 안 그런데 본관에 근무하는 정규직 직원들은 좀 냉냉한 면이 있어요. 대부분 그렇더라고요."

  "근데 전에 일하던 분들 중에서 다섯 분은 왜 한꺼번에 나갔대요?"

  "전에 일하던 분들은 대부분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이었대요. 아무래도 계속 여기서 계약직으로 일할 수는 없으니 다른 곳에 가신 게 아닐까요?"


  다음날은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서울에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도, 이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그리고 나이에 대한 이야기도 특별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의례 침묵을 지키고 빠졌다. 하지만 계속 비밀로 하는 것은 뭔가 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게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저 올해 마흔! 이구요. 서울에서 십칠 년 살다가 내려왔어요."


  그렇게 공개한 서로의 나이는 신입직원 기준 제일 어린 직원이 스물네 살, 유일한 남자 직원이 스물여덟 살로 가장 많았다. 면접장에서 대기하며 젊은이들 일자리를 뺏는 기분이 들었는데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도 살아남아야지.




  "저 언니랑 열네 살 차이 나서 선생님보다 언니가 한 살 어려요. 그래서 어른들 대하는 거 괜찮아요."

  "경로 우대해줘요."


  커밍아웃 후 하루에 대해 평가하자면 나는 꼰대가 되었다. 이 년 동안 자취했다며 자신의 오래된 자취 경력을 뽐내는 것에 대해서도(자취 경력 십칠 년), 사회생활 경험에 대해서도("돈만 주면 야근할 수 있어요. 저 새벽 네 시까지 일한 적도 있어요." "돈이 다 가 아니예요. 저는 밤 새고 다음날 오전에 반차냈어요. … 그래요. 하고 싶을 때 열심히 돈 많이 버세요. 그럴 때 일해야지.") 나는 입만 열면 꼰대가 됐다. 그러지 않기에는 다른 직원들과의 나이 차가 너무 컸다.


  하루의 평가를 마친 후 나는 다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꼰대가 되느니 차라리 입을 봉해버리는 게 낫다.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 사람을 사귀러 간 직장에서 모처럼 만난 사람들의 나이가 너무 어리지만, 뭐 그래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다행히 약의 용량도 우려와 달리 출근일에 오히려 줄어들었다. 어쩌면 차츰 약의 종류와 복용량을 줄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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