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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Apr 07. 2022

경력직 신입과 젊은 꼰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았으면 말을 해줬어야지, 이 자식아.'

  "회사 일 중에 내가 모르는 건 없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니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이야기 안한 게 아니다, 이 자식아.'


  그동안 몸을 바짝 낮추고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단이 일어났다. 경력직 신입이 주제 넘게 까부는 걸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며 방치했다는 말을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졸지에 회사에서 일처리 못하는 직원이 되어 버렸다. 원통하고 억울하다.


  "A선생님한테 서류를 받아서 지시 받은 대로 처리했어요. 결재 단계에 오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담당인 줄 몰랐구요. 처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어떤 부분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몰라서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쯤에서 내가 자신을 고의적으로 프리패스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날은 하루종일 긁혔다. 그래도 자신이 오해한 건 알았는지 항상 내 앞자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날은 다른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며칠간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해 했다.




  MBTI를 이야기하며 그가 자신의 유형을 '젊은 꼰대'라고 말했을 때 빵 터졌다. 그리고 "맞는 거 같아요."라고 맞장구 쳤다. 이 젊은 꼰대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그저 상황에 내던져 진 채로 오해의 폭풍을 맞아야 했다.


  나를 돕고 싶었을 뿐인 또 다른 기존 직원의 개입, 담당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업무를 하달한 직원에게 물으며 처리한 나, 그 상황을 지켜보며 내가 경력이 많다고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분노했을 젊은 꼰대. 이 완벽한 앙상블이 원치 않는 갈등을 유발했다.


  퇴근길에 억울함과 함께 앞으로 업무 처리를 할 때마다 부딪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직원A는 무심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나도 안 맞아요."


  아,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안 맞는 사람이 또 있구나. 그 말 한 마디가 위로가 됐다. 그날 하루의 억울함이 눈 녹듯이 녹아버려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그날의 일을 잊어버렸다.


  "엄마, 우유식빵 안 샀지? 오는 길에 생각나서 샀어!"


  일기에 젊은 꼰대의 욕을 한 보따리 쓰고 잊겠다고 다짐했는데 일기 쓰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나는 어른이다.'


  나는 어른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해 보이는 젊은 꼰대와 계속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고 농담을 했다. 그의 장점과 내가 부러워 하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며칠 전에 있었던 업무 상의 불편함은 없던 일이 됐다.


  오늘 새로운 업무를 부여 받았다. 처리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이것저것 물어보자 젊은 꼰대가 말했다.


  "이렇게 쌤이 업무하다가 이상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요."


  기꺼이 그럴 것이다. 처음부터 상대를 무시하고 업무처리를 하겠다는 생각따위는 1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신입직원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느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더 잘해서 짐을 덜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원하는 대로 질문을 던져주기로 했다.


  나도 그게 훨씬 편해, 이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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