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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un 07. 2022

워라밸이란 무엇인가

  재취업 후 한동안 나의 시간은 업무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 없이 흘러갔다. 국고 사업의 특성 상 사업비가 나와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데 정부교체기여서인지 지급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보냈다. 미루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최대한 일을 해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쉴 틈 없이 일하는 날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좁은 틈을 비집고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회사 일이 바쁠수록 취미생활에 더욱 매몰되었던 익숙한 패턴을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재취업 후 몇 달만에 독후감을 쓰고 등록하는 일에 다시 열을 올렸다. 코로나를 앓고 난 이후 생활이 많이 무너졌는데,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브런치로부터 두 달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알림을 받았다. 아이패드를 공유(한다고 쓰고 뺏겼다고 읽는다)하는 남동생을 위해 알림을 모두 꺼뒀는데 귀신같이 그런 알림은 거르지 않고 보내주나 보다. 나도 글 쓰고 싶다고(광광광). 근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엉엉엉).


  오랜만에 블로그, 브런치, 한글파일 창을 열고 글을 쓰려니 불과 두 달 사이에 글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어색했다. 잘 쓰고 싶다는 부담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 전에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쓰던 글들이 더 이상은 손 끝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장은 중언부언 늘어져서 평소 내가 싫어하던 딱 그 문장 꼴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의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회사 일은 예전보다 좀 더 많아졌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고,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일들을 배우고 부딪히며 한층 더 바빠질 것이다. 그럴 것을 예상하고 있음에도 나는 이 일이 밉지 않다.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일이 싫지 않다고 해서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답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왜 우리는 일과 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고 하는가. 나의 하루에 생활의 지분이 더 많았더라도 나는 워라밸을 지키려고 노력했을까?




  워라밸이란 일과 생활 사이에 적절한 균형감을 찾는 일이 아니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워라밸이라는 방패를 든 것이다. 억지로 균형을 지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나를 나답게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해지니까.


  워라밸은 행복한 삶을 위한 마지노선이다. 나는 이 경계선을 밀고 들어가 내 삶에 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주고 싶다. 그러려고 지금 이 길을 택했다. 책을 읽는다. 글을 쓴다. 행복하려고 산책을 한다. 만약 내가 선택한 일들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길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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