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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un 10. 2022

퇴사희망자의 주변인이 되다

  재취업한 이후로 나의 위치는 모든 것이 역전됐다. 숙련된 경력직에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경력직 신입이 되었고, 이 조직에서 가장 낯선 사람답게 상대적으로 업무 관련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절을 못하는 막내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시간 외 근무를 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막내가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 팀장님에게 전하는 것과 막내가 수당은 제대로 받고 일하는지 물어보고 챙겨주는 것뿐이었다. 나의 일상을 전해들은 전 회사 동료는 예전 버릇 또 튀어나온다며 안타까움인지 뭔지 모를 말을 했다.




  또 다른 변화는 변두리인으로서 회사에 불만을 가진 고인물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듣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다고는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의 업무량과 비교해 이곳에서의 업무량은 객관적으로 많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비효율적인 업무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물리적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비효율성에 큰 불만은 없다.


  이 공간에는 묘한 정서들이 뒤섞여 있다. 은퇴 후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자부심과 회사가 연차가 오래된 직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무리들이 모여 매일 무의미한 수다 시간을 가진다. 그들도 알고 있다. 회사가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그들의 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들은 업무시간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또 하나의 정서는 계약직들의 정규직에 대한 열패감? 어차피 교직원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들의 직장이라는 거짓뿐인 타이틀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정직원으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들 조금씩은 하는 것 같다. 예전부터 그런 구분에는 관심없었던 터라 이제는 귓등으로 넘기고 있다(정규직 따위는 됐으니 월급이나 올려주세요).




  최근의 핫이슈는 계약직 직원 중 이곳에서 연차가 가장 오래된 직원이 퇴사 선언을 한 것이다. 퇴사 루트는 다들 비슷한 것 같다. 퇴사 선언을 한다. 부서장에게 저지 당한다. 강경하게 나가지 않는 이상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우리 팀에는 그런 직원이 있다. 한동안 별말이 없어서 남기로 한 줄 알았는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불만의 씨앗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처음 그의 퇴사 선언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그래도 여기서 십 년 동안 일했는데.'였다. 이 발상은 내가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선배들과 지인들이 해줬던 조언과 같다. 계속 다니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 나의 솔직한 심정은 서운함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꺼내려 하고 있다. 선배들의 심정이 처음으로 이해갔다.


  그 다음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결정은 본인에게 달렸다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의 상황은 다르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퇴사할 당시만 해도 나는 '나 하나쯤은 부모님이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퇴사한 이후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고, 보유한 자산을 좀 더 처분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정말 운좋게 재취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내게 퇴사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은 나와 달랐다. 그는 당장의 생계가 걸려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퇴사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팀장님에게 세게 말했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의 말은 언제나 농담이 섞인 허허실실 같았다. 아마 팀장님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모두가 내 일이 커보이고 남의 일이 작아보인다. 그러나 분명 이전에는 초반에만 고생하면 된다고 했던 일을 이제 와서 아니라고 도리질 친다거나, 팀장님이 자리를 옮기라고 한 것에 불만을 표했음에도 최종적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자 더 불편해졌다고 비난하는 것이라든지, 하다못해 팀장님이 휴가를 사용하는 것까지 책망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내겐 너무 고역인 일이었다.


  내가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을 때 주변 사람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느꼈을까. 심지어 나는 삼 년간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퇴사였다. 막판쯤에는 "선생님, 이제 진짜 퇴사할 때 이야기하세요."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이런 게 바로 타산지석일까.


  그는 과연 그만둘 것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그는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무엇보다 살아있는 것이 중요하다. 더 망가지면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도였다. 내가 어떤 과정을 겪어 왔는지 모르는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취업여부와 상관없이 6월까지만 근무할 거라는 그가 정말 그렇게 할 것인지 의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은 거리를 두기도 하지만 힘든 사람을 모른 척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 당장 그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그가 빨리 퇴사해주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니까 그를 탓할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해 이기적인 욕심을 부려본다. 최근 약 복용량과 종류가 다시 늘어났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퇴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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