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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Mar 31. 2022

내 뼈에 새겨진 교직원

  친구와 생일파티를 한다며 외박 신청한 학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동료직원이 고민한다. 이전에 유사한 사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일일이 조회를 해봐야 해서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엑셀 다운로드는 되지 않는지 물어보자 사유까지는 엑셀에 나오지 않는단다. 시스템팀에 수정 요청하고 싶단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다.


  "선생님이 입장 바꿔 생각해봐요. 승인 안 해주면 어떨 거 같아요?"


  이십대의 직원이 대화에 참전한다.


  "저는 본가에 간다고 거짓말하지 이렇게 솔직하게 안 적죠."


  또다른 이십대의 직원이 답한다.


  "학부모 입장이라면 승인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마흔의 내가 반대론을 펼친다.


  "아뇨. 근데 그러면 애들이 저를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담당직원은 곤란한 목소리로 다시 질문한다.


  "학생들이 꼰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에게 받을 민원이 더 문제죠!"


  불쑥 언성이 높아진다.


  "그냥 전임자한테 유사한 경우에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면 안 돼요?"


  결국 동료직원은 전임자에게 물었고 돌아온 답은 그냥 승인하라였다.


  "그냥 물어보는 게 최고예요."


  답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그 전임자 역시 동료직원과 나이나 경력에서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직원 역시 그걸 알아서인지 승인 처리는 했지만 마음 한 켠이 찝찝한 듯했다. 학교가 안전하게 보호해줄 거라고 학부모가 믿고 맡긴 기숙사에서 외박해 사고가 터지면 민원 발생 소지가 높다. 부디 학생이 무탈하게 기숙사로 복귀하길.




   대화 끝에 또 나만 꼰대가 되었다. 아직 학생 입장에서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이십 대의 직원들, 별별 민원을 다 겪어본 터라 노파심이 앞서는 마흔의 경력직 신입. 점심시간에 MBTI 유형을 말하며 간극을 좁혔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은 골이 생긴 기분이다.


  이제야 알았다. 나이차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아직 학생이고, 나는 직원이다. 그들은 아직 학생처럼 생각하고, 나는 직원처럼 생각한다. 그들은 아직 학교에 선후배가 남아있고,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그 차이가 우리 사이에 명백한 선을 만든다.


  나도 모르는 새 내 뼈에 '교직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나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블로그 이웃님들과 브런치 작가님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벽이 이십대 동료직원들에게서 느껴지는 걸까? 이웃님들과 작가님들이 나이 차이가 많기 때문에 나와 교류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무척 속상할 것 같은데. 어째서 나는 동료직원들에게 거리를 두고 조심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그 다짐이 단번에 깨졌다. 나이 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학생과 직장인의 차이다. 나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그네들과 세대 차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필 교직원이라는 직업군이 그 차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한때는 나의 고객이었고, 민원인이었던 나의 동료들과 언제쯤 그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온전히 학생 티를 벗을 때쯤에 어쩌면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괜시리 벌써 서운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앞날이 더 많이 빛나기를 옆자리에서 혼자 몰래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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