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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ul 02. 2022

나는 꼰대가 되었다

  "도시락 말고 딴 거 먹고 싶다는 거 보니 어제 한 잔 했나 보네."

  "실은 아까 젊은 선생님들이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한창 맛있는 거 먹고 싶은 때죠."

  "○선생도 아직 젊고 한창인데 왜 그런 말을 해요~"

  "팀장님…. 선생님들보다 팀장님과 나이가 더 가깝습니다."


  새로운 지역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개월차에 접어들고 있다. 눈치 없이 딱히 젊은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불이익을 모른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가장 감정적인 막내의 적대와 무시를 받는 걸로 돌아왔다. 나는 만만하고 함부로 해도 괜찮은 꼰대가 된 것이다.


  현재 심정을 묻는다면 이걸 어떻게 우아하게 조져놓을지 고민중이다.




  바쁜 와중에 워크숍을 다녀왔다. 워크숍 계획을 짜는 동안에는 윗분들을 잘 보좌할 것처럼, 윗분들과 잘 어울릴 것처럼 말하던 젊은 직원들은 막상 워크숍 당일이 되자 자신들끼리 똘똘 뭉쳤고, 윗분들 옆에 앉지 않기 위해 어설프게 자리를 피하는 등 그야말로 용을 썼다.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앉았을 때 내 귓가에 "○○쌤, 처장님 옆자리에 앉았어."라는 말이 콕 박혔다.


  '니들이 아무도 안 앉고 룸 앞에서 서성이니까 그런 거잖아.'


  내가 처장님 옆자리에 앉았다고 소근대던 직원은 입사 초기 모 실장님이 보낸 메일을 보고 직접 전화를 하는 나에게 어떻게 실장님에게 직접 전화할 수 있냐고 호들갑을 떨었던 직원이다. 전 직장에서는 처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교수님들과 가감없이 소통했던 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연락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장님에게 메일이 왔는데 조교님에게 전화해서 실장님의 의중을 살펴봐달라고 해야 됐던 걸까. 다행히 이곳에서도 내 방식이 옳았다.


  "나눠서 앉을까요?"


  젊은 직원 중 최근에 입사한 직원이 옆 테이블에 앉자마자 같이 다니던 직원은 바로 이 질문을 던졌다. 사실상 따로 앉겠다는 의미였으며, 자기들끼리 가까운 자리에 앉고 싶은데 사람들이 순서대로 들어와 앉기 시작한 테이블의 남은 자리로는 불가하다는 걸 인지했기에 나온 말이었다. 갓 입사한 직원이 눈치만 보다가 앉은 것이 실수였고, 계산착오가 발생하자 다른 직원이 빠르게 손절한 것이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까지 와서 왕따시키는 거 유치하지 않아요?"


  며칠 전에 그렇게 말한 직원이었다. 어린 직원들의 무리짓기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무리에서 잠깐이라도 이탈하는 것이 이미 공포감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젊은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뭉치려고 애쓰는 사이 나는 의도치 않게 그들을 대신해서 팀장님을 비롯한 윗분들과 다니는 직원이 되어 버렸다. 전혀 의도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기다리는데 남겠다는 팀장님의 등을 떠밀어 팀장님이 혼자 나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나섰건만, 정말 놀랍게도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자리에 남아있는 건 한 사람이면 충분한 일이었는데. 윗분들 사이에 젊은 직원들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고, 내 존재를 몰랐다가 이름을 물어오는 분도 생겼다.


  술자리에서도 마냥 조용히 있을 수 없었다. 술 한 잔 하지 않으니 윗분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도 않고, 처음에는 분위기를 살피고 내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려나 해서 조용히 밥만 먹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윗분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우스갯소리로 본부 스카웃 제의를 받는 일까지 생겼다. 우스갯소리라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정도 수준의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본부에 가면 퇴사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지난 회의의 연장선상으로 홍보업무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분이 있어 내가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회의에서 다른 직원이 던진 잘못된 용어에 대해서 정정했다. 본인의 이름이 나오자 내쪽을 쳐다봤는지 대화하던 상대가 그 편을 흘깃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일반일들도 알 정도의 기본적인 용어였는데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정정할 수는 없어서 참아준 게 내가 그 직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향후에 잘못된 용어를 업계 관계자와의 미팅에서 사용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거라 뒤늦게라도 정정해주었을 뿐이다.




  나는 꼰대가 되었다. 젊고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의 실수에 대한 윗분들의 불만을 고스란히 들으며 공감할 수밖에 없을 만큼 나도 경험이 쌓였고, 그들이 뒤에서는 꼰대라고 비꼬면서 앞에서는 비위를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그분들과 업무적으로 훨씬 많은 걸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꼰대가 되어 버렸다.


  술이나 싸바싸바보다는 진심을 나누는 꼰대가 되고 싶다. 윗사람 알레르기가 있는 주제에 어린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이 편한 성향을 가진 나는, 마흔이 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윗사람 근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직원이 되었다. 젊은 직원들이 배척하는 꼰대의 범위에 나도 포함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배척했으면서 내가 윗분들이랑 다니는 걸 못마땅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너랑 안 논다고 다른 사람이랑도 안 놀아야 되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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