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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ul 25. 2022

우울증은 완치되는 병일까

  하천 옆에 깔린 데크 위에 오르면 정면에 이차선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버스들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출근길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대로 도로에 뛰어들면 편해지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오늘 점심은 뭐 먹지 같은, 몹시 무미건조한 느낌의 문장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런 생각은 하면 안돼.'라고 속으로 읖조렸다. 평범한 날이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러 가족들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빠르게 바구니에 담았다. 녹기 전에 가져가려고 계산도 서둘렀다. 셀프계산대 옆에 서있던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 것도 계산 좀 해줘요."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 나도 안다. 지금 이 상황이 분노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나의 사소한 계획이 어긋난 것에 분노했다. 조금 전 먼저 결제하던 할아버지가 버벅댈 때는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서려고 했던 주제에.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태도로 할머니의 계산을 도왔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냉동고 성능이 좋은가 보다. 아이스크림이 꽝꽝 얼었네."


  할머니의 계산을 돕고, 계산한 아이스크림을 주워담고, 어긋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았다.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고 여유 있게 계산을 도왔더라도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냉동고는 상상 이상으로 성능이 좋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조차 납득되지 않는 감정기복이 생길 때마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거나 싫은 것도 아니고, 딱히 약을 빨리 끊어야겠다는 초조함도 더 이상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순간들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는 약을 먹지 않았다. 그저께도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후 늦게 약을 먹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다음 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당일에도 감정상태가 훅 떨어졌다. 알면서도 약을 먹지 않았다. 혹시나라는 1%의 기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비뚤어진 오기였을까.


  퇴사희망자에게 시달리면서 한 달 넘게 추가로 약을 복용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서 약을 끊는 순간, 감정상태가 훅 떨어지는 걸 느꼈다. 아, 그동안 약기운으로 그 정도의 상태를 유지해왔던 거구나. 씁쓸했다. 그렇다고 감정 상태를 계속 끌어올리기 위해 불필요하게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감정상태는 여기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지금 내 위치는 여기다.




  우울증은 완치되는 병일까? 완치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누군가는 완치되었다는 카더라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나았다가 재발했다는 카더라도 들었다. 누군가는 평생 안고 간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완치되는 부류의 환자라고 생각했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해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었을 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완치되지 않는 류의 환자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고, 매일 아침 약을 먹고, 일상이 되어버린 패턴이 이제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약을 먹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는 건 싫다. 하지만 뜯어진 약봉지는 가족들의 눈에 너무도 쉽게 눈에 띄고, 그냥 물 먹으러 온 척해도 내가 약을 먹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불편하지 않지만, 이왕이면 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완치되었다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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