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Aug 07. 2022

퇴사한 회사를 이 년만에 찾아갔다

  "퇴사하고 선생님이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어요."

  "저도요."


  퇴사할 때만 해도. 아니 전 회사 방문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퇴사한 회사를 다시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속된 말로 그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눌 줄 알았는데 정확히 이 년이 지난 시점에 나는, 내가 6, 7년 동안 몸 담았던 회사를 다시 찾았다.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회사를 방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카의 정기검진을 위해 여동생과 조카는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에 방문하기로 했다. 짧은 일정인데다 다시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터라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1박 2일로 회사 워크숍을 다녀온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태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라도 계속 해서 여행을 시도하며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 여행에 합류했다. 무려 이 년만의 서울행이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본가에 내려온 이후, 나는 주로 내 방 안에 박혀 있었다. 그쯤에 나는 외출할 때마다 공황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버스를 타자마자 십 분만에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병원을 갈 때조차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했다. 만나자는 친구들의 연락이 두려웠다. 경기도에서 내려온 친구에게 가타부타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 이런 처지에 있다보니 우습게도 코로나가 든든한 보호막이자 핑계가 되어 주었다.


  며칠 전, 휴가를 내고 이천과 포항에서 본가로 내려온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까지 나가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뿌듯했다. 재취업 후 금세 그만두지 않은 걸 놀라워하던 부모님의 심정이 새삼 이해됐다.




  "그만큼 상태가 좋아졌다는 거죠."


  외출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우울증으로 퇴사한 회사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만나고 인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요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세 곳을 방문해 사람을 만나겠다는 계획은 결국 어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한 곳에서 모든 시간을 소진했다. 여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8시부터 왔어야 됐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챙겨준 간식과 기념품을 양손에 쥐고 호텔로 향했다. 동생과 조카와 다시 합류하기 전 손을 가볍게 해야 했다. 중간에 통화를 했던 여동생은 내 목소리가 밝아 안심했다고 한다. 정말로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시간 가는 게 아깝게 느껴질 만큼. 퇴사를 할 때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지금 선택이 맞는 건지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그때의 느낌은 이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밉지만 사람은 좋은 회사. 다시 본가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삼 개월 전에 그만둬 만나지 못한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 동료 역시 비전은 없지만 사람들은 좋은 회사라며, 자신도 이 회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 둘 때 처장님이 회사를 잊지 말라고 했을 때는 '저주하시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을 해왔고 주기적으로 회사에 대한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회사를 잊으려면 사람을 끊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면접이라도 보러 온 건가 했지."

  "이러구요?" (청바지 차림)


  회사에는 여전히 우울증을 핑계로 퇴사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뜸 나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다른 회사에 입사해 업무 때문에 온 건지, 혹은 면접을 보러 온 건지 물었다. 결국은 "그냥 놀러 온 거구나."로 끝났다. 일전에 업무 상 문의하느라 통화했던 동료는 내게 서울에 있는지 물었다. 친하지 않았던 동료들에게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


  "휴가를 이틀 이상 못 쓰면 유럽 여행은 어떻게 가요?"


  재취업한 회사는 지역 특색 때문인지 다니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서울로 오기 위해 3일간 휴가를 냈는데 알고보니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단직원이 3일 연속 휴가를 쓴 일이 없다고 한다. 팀장님은 이 일로 인사팀에 문의까지 했다. 전 회사에서 연휴를 끼고 길게는 2주 정도까지 쉬었던 나로서는 이 일이 꽤 충격이어서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했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경험의 폭이, 자유의 폭이 줄어들고 있었다. 딱히 장기휴가를 쓸 일도 없었지만 숨이 막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전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전 회사에 다녀오면 이 질문에 보다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퇴사한 회사를 찾은 두 번째 이유였다.




  면접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채용 전문사이트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채용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퇴사 전, 내가 마지막으로 8개월 동안 일했던 분야도 있었다.


  '나는 다시 이곳에 가고 싶은가?'


  이제는 회사도, 사람도 밉지 않다. 이 년 동안 나는 나를 누르고 있던 그 분노에서 많이 해방됐다. 그렇지만, 딱히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직은 그 정도로 괜찮아지지 않았다. 분노는 가셨지만, 에너지가 부족하다. 나는 좀더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아직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다음 스텝은 지금이든, 이전이든 '회사'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은 완치되는 병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