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Jul 11. 2022

어른답게 살아가는 법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직원들과 일하면서 어른답게 행동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다. 내가 하는 어른답게 행동하기란 참아주기, 인내하기. 어제도, 오늘도 나는 인내하며 어린 직원의 자존심에 가장 생채기가 나지 않는 방법으로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생활을 하며 모가 난 성격(=개성)이 둥글어지고 평범해지는 것과는 또다른 과정이다. 인내하며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수많은 선배들이 나를 얼마나 많이 참아주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려고 애써왔는지. 그래 나에 비하면 너 정도는 양반이다. 이래서 엄마가 나에게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으라는 악담을 했었나 보다. 그때도 그 말이 퍽 무서웠다.




  먼저 산다는 것은 이후 세대가 겪지 못한 일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국사 교과서에 나올 만큼 큰 시련이 아니더라도, 경험이란 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기억이 흐릿해지더라도 본능적으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경험은 떠올리게 해준다. 과거에 있었던 소동들, 이슈들. 그것들이 내게 말해준다. 뭔가 잘못 되었다고. 그리고 잘못된 것에 맞서 논리적이려고 할수록 기억은 다시 또렷해지고 세밀해진다.


  십여 년 전에 교육 관련 저작권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대학 주변 복사집에는 불법 복제 및 복사물에 대한 단속반이 출동했고, 저작권 문제로 학생들이 고소 당하기도 했다. 대학과 정부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 보증금 제도에 합의했다. 많은 대학들이 학생 인당 또는 복제량으로 책정된 보증금을 지불하고 있지만, 저작권자에게 불리한 조건이라 대학 미만 교육에 보증금제도를 도입하는 일은 현재도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교육에 쓰이는 건 저작권 상관 없지 않아요?"


  라고 교육학과 전공자들이 말한다. 교과목 중에 저작권 관련 수업은 없나보다. 그래도, 교육적 목적이니까 책 전체를 제본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건 문제 없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문제이지 않니? 그럼 저자는 뭐 먹고 사니? 책 하나 써서 지출만 나갈 거면 저자와 출판사는 뭐 하러 책을 찍어내니? 어이없는 주장에 말문이 막힌다. 바른 길을 알려주려고 해도 듣지 않는다. 결국 나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일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나도 동의한 사람이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결국 다음날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가이드를 출력해 형광펜까지 칠하며 설명해줬지만, 법령을 자기 편한대로 해석한 주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가 보내준 링크의 협회에 전화를 해 내 해석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승복하지 않았다. 그 협회는 믿을 수 없다는 괴랄한 주장을 펼치며 다른 기관에 내가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서는 우습게도 자기 말이 맞았다고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쯤에 내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마도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어?'이지 않았을까.


  "무조건 전체를 복사하는 건 안 된다면서요?"

  "선생님, 제가 계속 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첫째, 비교과에서는 수업목적으로 사용해도 저작권법 위반이다. 둘째, 책 전체를 복제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 제가 아는 범위에서 절판이 아닌 경우에는 저작권 위반이다. 셋째, 저자의 동의를 받는다면 저작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제가 교수님의 동의를 받으라고 했고, 방금 선생님이 다른 책이 문제라는 이야기도 했잖아요."


  그는 계속 말을 바꾸며 자기 말이 맞았다고 우겼다. 최초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교육목적이면 저작권법에 문제가 없다. 나도 더 이상은 굽혀주지 않았다.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며 교수님에게 동의를 받으라고 하지 않았냐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 그가 먼저 입을 닫았다.




  나는 이곳에서 어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숱한 상황 속에서 나서지 않으려고 침묵으로 임해왔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더욱 침묵의 소중함을 느꼈다. 내가 돕는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결코 돕는 게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상대를 도울 필요는 없다. 잘못된 일은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바로 잡아진다. 내가 아니라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젊은이의 서투름을 인내해주는 것 외에도 침묵할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100%의 인생을 갈구하는 것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