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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Sep 25. 2022

직장 내 인간관계에도 스토킹이 있다

  "저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셔서 중요한 업무를 맡겨주신 건 감사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분에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감사업무를 도와주겠다는 수요 없는 공급에 일주일 동안 노출된 후 나는 팀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현재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으며, 팀장님과 행정총괄직원이 중요업무를 그 직원에게 맡기지 않으니 나를 통해서 해당업무에 접근하려는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마 사무실에 돌아가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냐고 카톡이 와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 말은 예언이 됐다.)


  결과적으로 나의 요청은 거절됐다. 해결해주고 싶어하셨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고 결국 해결은 내 몫이 됐다. 나는 그 직원과 더욱 선을 그어야 하고 예의바른 선에서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나는 이 사실을 딱히 숨기지 않았고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하는 행정총괄직원에게도 지금까지의 일들을 털어놨다. 그는 키득거리며 "미안한데… 좀 시트콤 같네요."라며, 덕분에 업무 스트레스가 좀 풀렸다고 말했다. 그래 뭐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지.




  감사업무가 종료될 무렵부터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전이 100이었다면 지금은 1이랄까. 대신 이번에는 내가 일을 너무 빠르게 해서 자신이 일을 안하는 것 같다고 나의 업무속도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나에게는 일이 좀 덜 바빠지면 해야 할 리스트가 따로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없거나 있다고 해도 하기 싫은 듯했다.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지만 일은 하기 싫다. 그게 현재 그의 상태다. 나는 "때가 되면 하게 되겠죠."라고 답했다. 업무량의 차이는 업무분장을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그는 가급적 손이 덜 가는 일을 맡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전임자들과 내 의견은 묵살됐다. 그는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불만이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는데 왜 제가 안 괜찮죠?"

  "그건 저도 잘…."


  수십 차례 반복된 이 대화에 대해 나는 "투사"라는 심리용어를 써서 그에게 설명했다. 내가 힘들어 보이는 것은 당신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나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 나는 괜찮으니 본인이나 챙기고, 본인이나 쉬어라. 그럼에도 이 질문이 반복되는 걸 보면 여전히 그는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모양이다.




  같은 영역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가 기대했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다. 전임자들처럼 영혼의 단짝이 되는 것을 기대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업무 파트너가 아니다. 자신이 메인이 되길 기대했겠지만, 야망과 달리 그는 윗사람 앞에서 의견을 내는 타입이 아니다.


  이따금 그가 "선생님은 윗분들과 대화가 통하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보수적인 조직에서 내가 겁대가리 없이 윗사람들과의 대화에 끼어들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텍스트 그대로였다. 그에게는 윗사람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지식이나 시야, 경험이 없다.


  무임승차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대학 때 "선배 이름은 뺄게요."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때문에 자꾸만 같이 일을 해야 한다는 그에게 혼자 일하는 게 좋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사람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에게 협조를 요청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회의를 같이 가야 한다는 의견에도 반대했다.


  다행히 이전에는 소속 팀원이 모든 회의에 함께 참석하는 걸 원했던 책임교수도 그가 회의에서 하는 역할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인지하였기에 전과 다르게 내 의견에 동의해줬다. 불필요한 자리에 참석해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그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구독하는 사건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종류의 관계도 스토킹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쪽이 원치 않음에도 일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모두 스토킹의 범주에 속한다. 입사 초 감정쓰레기통이 되었던 일, 개인시간을 침해하려는 시도들, 업무 진행을 방해하는 카톡 감옥으로의 호출, 아무도 원치 않는 업무 개입 시도. 나는 스토킹 당하고 있다.


  퇴근 후 휴대폰을 방치하는 바람에 처장님에게 연락이 온 걸 뒤늦게 발견했다. 처장님과 연락 후 그의 메시지에도 답하며 방금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 후에는 휴대폰에 신경 꺼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의 메시지도 무시해도 되냐고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의 메시지는 업무시간 전, 중, 후를 가리지 않고 날아든다. 아주 사소한,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교수님과 같이 있는지, 벌써 출근했는지, 처장님이 아침에 연락해온 것인지. 아마 애인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내 생활과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을 것 같다. 더 심해지기 전에 선을 확 끊어놔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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