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장면들의 조화
초등학교 6학년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일주일간 몸살이 난 적이 있다.
무언가 나를 변화시킨 것들은 이따금 커다란 충돌을 일으킨다.
지구가 새로운 생태계에 변화를 주기 위해 6600만 년 전 갑작스럽게 지구로 날아온
소행성이 충돌해 공룡들이 멸종했다는 이론인 '소행성 출동설'처럼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충돌이 있어야 한다. 그 충돌은 우리들에게 고통, 아픔, 괴로움, 혼란 등의 감정을 주고는
끝내 '나는 원래 성장, 조화, 필요, 배움 이런 이름으로 너에게 왔었어'라고 이야기한다.
<데미안> 이후 나에게 몸살을 안겨준 영화들을 구석에서 더듬어 꺼내보겠다.
마이크 카일(Mike Cahill) 감독
"내가 가진 생각, 내가 믿었던 것들을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이토록 완벽하게 서서히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소피를 사랑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다.
제임스 맨골드(James Mangold) 감독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만날 수 있는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눈을 떠서 눈을 감기까지 우리는 단 1초도 자유롭지 않지 않을까
이 사실은 안타까운 것일까 다행인 것일까
중학교 때 본 이 영화는 나에게 단 한순간도 쉽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주지 않았다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
마지막 대사가 참 좋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나는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안도감(?)을 느꼈다. 머무르지 않아도 되고, 돌아다녀도 되고, 멀어져도 된다는 안도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쇼를 진행 중이고, 나는 그 쇼를 끝내고 다음 쇼를 시작해도 된다.
"I was never a great man. I never saw myself that way. I was a big fish in a small pond, and I was okay with that."
어렸을 적 화려한 색감과 비현실적으로 창의적인 스토리 라인이 그저 즐거웠던 팀버튼의 영화들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겐 때론 너무나 현실적이라 슬프기까지 한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Giuseppe Tornatore) 감독
우리 모두에게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면
나에겐 토이스토리와 시네마 천국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시네마 천국의 OST를 듣고 있는 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모두 설명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본 시네마 천국은 건강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대를 그다음세대가 또다시 어루만지며 그렇게 어우러지는 우리의 공동체를 느끼게 한다
건강한 어른은 그렇게 한 아이의 꿈을, 삶을 영화처럼 느끼게 해 준다
존 라세터 (John Lasseter) 감독
토이스토리 시리즈 중 1을 가장 좋아하는데
오프닝의 'You've got a friend in me'라는 곡을 들으며 영화가 시작하는 모든 컷들이 좋다
어릴 적 이 영화를 보고 동생과 장난감들이 실제로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매일밤 노트에 장난감들의 움직임을 체크해두곤 했다
이따금 엄마나 아빠가 몰래 위치를 옮겨둔 날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 같다.
토이스토리를 보고 난 뒤에 나는 모든 장난감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
설령 그들이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렸었다 해도 나에게 그들은 각기 다른 객체였으니
아마 계속 추가될 예정인 이 글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충돌을 주었으면 한다
예술이란 누군가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그 존재가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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