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 팔각정에 두 남녀가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눈다.
"서울엔 저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네.."
내 버전으로 번역해 보면 이렇다.
"홍콩은 국제학교가 50개가 넘는다는데, 내 아이들 보낼 곳이 하나 없네.."
국제학교가 많으면 뭐 하나. 수요는 더 많다. 외국인은 당연하고, 자녀에게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고픈 홍콩인, 중국 본토에서 유학온 이들까지 경쟁이 치열하다. 홍콩의 국제학교는 외국 국적 비율을 일정 수준만 충족하면 내국인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비중은 2/3 정도다. 물론 이중 국적의 홍콩인, 중국인도 많다. 다만 코로나 이후로는 외국학생이 10퍼센트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가장 수요가 많은 초등 저학년의 경우는 2~3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학교가 많았다. 3년간 파견된 직원의 입장에서는, 귀국할 때쯤 인터뷰 보라는 메일이 오는 셈이다. (실제로 대기한 지 2년이 지나 인터뷰 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막상 면접을 보게 되면 많은 학교가 영어실력을 요구하는데, 이 역시 영어권 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다.
차선책은 일단 자리가 있는 학교에 보내놓고, 원하는 학교에 자리가 나거나 인터뷰 볼 실력이 됐다 싶으면 중간에 전학을 시키는 것이다. 홍콩섬 동쪽의 타이쿠싱에 위치한 Delia School of Canada(델리아)는 학생의 전학이 빈번하여 자리가 금방 나므로 입학하기가 수월하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타이쿠싱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 동네에 산다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스쿨버스를 태우면 (1) 버스비 부담이 추가로 있고 (2) 버스가 이른 시간에 다니므로 애들을 일찍 깨워야 한다), 학비도 저렴한 편이고, 입학 시 지불해야 하는 거액의 육성회비도 없다. 인도, 일본, 한국 학생의 비중이 많다.
타이쿠싱 옆 동네의 사이완호에 있는 한국국제학교(KIS; Korean International School)도 이름에서 보듯 많은 한국인이 다닌다. 위치와 학비에 있어서는 델리아와 비슷한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국제학교들이 학비를 1년 치를 받고, 환불이 번거로운 반면 이 두 학교는 특이하게 학비를 매달 받는다. 아마 전학이 빈번하여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내 아이들은 홍콩에 왔을 때 영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델리아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델리아는 영어를 못하는 경우 초기에 정착하기 좋은 학교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였고, 한국 애들이 많아서 적응이 수월했다. 하지만 체류기간이 제한된 주재원이다 보니 좀 더 영어를 몰입해서 배우면 했다. 그래서 전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반년 후 전학 간 곳은 영국계인 노드 앵글리아 (Nord Anglia International School Hong Kong)였다. 노드 앵글리아는 국제학교 체인으로 북경, 두바이, 마닐라 등 전 세계에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영국계는 미국계보다 1년 먼저 시작한다. 당시 여섯 살인 둘째 아이도 학기가 시작하는 8월에 1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다양한 활동과 매일 쓰기 교육 등을 통해 아이들이 재미있게 다녔다. 국제학교라기보다는 거대한 영어유치원 같았다. 다니는 동안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