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공고]
- 지원대상: 홍콩 사무소
- 파견기간: 201X 년 초부터 3년간
- 지원자격: 차장급 직원
탐이 났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외국 바이어와 거래가 많아 해외 네트워크가 꽤 있었다. 한 번은 해외 사무소에서 근무해보고 싶었다. 남편은 휴직하고 같이 갈 상황이 안 됐다. 무슨 망한 프로젝트의 뒤처리를 하고 있어서 회사에서 놔주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이 자주 방문하려면 유럽이나 아프리카 같이 먼 곳은 곤란했다. 아시아, 그중에서 인프라가 갖춰진 선진국이면 더욱 좋겠다. 그럼 홍콩이 딱인데. 애들 초등학교 때 데려가면 더욱 좋고.
문제는, (1) 내가 원하는 국가에 (2) 내가 원하는 시기에 자리가 나도 (3) 나를 뽑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거다. 이번에 지원하자니 애들이 어린 점이 좀 걸렸다. 당시 각각 여덟 살과 여섯 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다. 된단 보장도 없으니 일단 지원해 보기로 했다.
[홍콩 사무소 파견자: 수메르 차장]
동료들의 축하 카톡이 연달았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덜컥 겁이 났다. 외국에서 삼 년간 혼자서 회사를 다니며 어린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거다. 홍콩은 외국인 도우미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했다. 도우미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다. 부모님이 같이 가서 도우미 구할 몇 주까지만 도와주겠다고 했다.
홍콩 사무소 선배 직원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파견 나가게 된 수메르 차장입니다."
"축하해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잘 부탁드립니다. 뭘 준비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일단 매뉴얼을 보낼게요. 보면 비자 신청 서류라던가 준비할 거 다 나와 있어요. 애들이랑 같이 오죠? 참고로 애들 학교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제일 먼저예요."
한 달 전에 미리 홍콩에 방문했다. 부동산의 도움을 받아 아파트도 몇 채 둘러보고, 아이들이 입학할 학교에서 인터뷰도 봤다. 홍콩은 외국인 최소비율만 유지하면 내국인도 국제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웬만한 학교는 대기가 상당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학교 선택의 폭은 좁았다. 일단 영어를 못해도 입학이 바로 가능한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출국 전 몇 달이라도 영어유치원에 보내서 준비시키라고 권했다. 당시는 그럴 상황이 못됐었다. 처음에 반년은 영어에 익숙해지느라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둘째 아이는 처음에 화장실 간다는 말도 영어로 못 해서 바지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는 "캔 아이 고투 어 토일렛"이라고 말하라고 영어발음을 한글로 종이에 적어주었다.
아이들이 가기로 한 학교는 홍콩섬 동쪽 타이쿠싱에 위치했다. 학군, 교통, 쇼핑 등 인프라가 좋아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자연스레 집도 그쪽에 구하기로 했다. 집 계약은 회사가 하기 때문에 착임 후 가능했다. 보통은 계약 전까지 호텔에서 몇 주 묵지만, 나는 부모님도 함께 갔기 때문에 가구와 가전이 갖춰진 퍼니시드(furnished) 아파트에서 당분간 살기로 했다.
출국 전날은 잠이 통 오지 않았다. 혼자서 삼 년간의 미션을 잘 완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