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사춘기에 들더니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간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원을 가고, 편의점에서 복숭아맛 음료를 결제한다. 집에 오면 더 이상 엄마에게 들러붙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힌다. 친구들과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하며 시시덕댄다. 드디어 육아 해방인가 하며 기쁘다가도, 이젠 내가 필요 없나 하는 이율배반적 감정이 든다.
나는 아이의 탄생이라는 인생 최초의 순간에 같이 있었다. 이후로도 아이의 모든 첫 순간을 가능한 함께하고 싶다. 처음 좋아한 연예인 이야기도 같이 하고 싶다. 그러기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부쩍 서먹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아이의 세계에 살짝 발을 담가보기로 한다.
"엄마, 오늘부터 (1)투바투 (2)수빈이 (3)덕질할 거예요."
"누군데?"
문장을 해석해 보자.
(1) 투바투: BTS가 소속된 빅히트뮤직의 아이돌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by together)의 줄임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후로 이름 긴 가수는 오랜만이다. 영어 앞 글자를 따서 txt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메모장은 이길 수 없을 텐데..
홈페이지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수빈, 연준, 범규, 태현, 휴닝카이 다섯 멤버로 구성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하나의 꿈으로 모여 함께 내일을 만들어간다'라는 뜻으로 하나의 꿈과 목표를 위해 함께 모인 소년들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는 밝고 건강한 아이돌 그룹이다."
우리는 5인조 아이돌 그룹입니다,라는 말을 길게 써놨다.
보라, 얼굴이 구별이 안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이목구비의 정확한 비례의 문제이므로 잘생긴 사람은 비슷한 얼굴에 수렴한다. 반면 못생김은 제각각이다.
(이하 모든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플레디스 홈페이지)
(2) 수빈: 투바투의 멤버 중 한 명. 2000년생이다. ("너보다 열 살은 많은데 수빈이라고 불러도 돼?")
내 아이의 남자 취향이 이렇구나. 기저귀 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런 때가 오다니. 다른 아이돌그룹에서는 BTS의 슈가, 세븐틴의 호시가 잘생겼단다. 사진을 찾아보니 뭔가 느낌이 비슷하다. 약간 두부(?) 같은 얼굴을 좋아하네.
투바투의 수빈이는 이렇게 생겼다.
BTS의 슈가는 이러하다.
세븐틴의 호시도 비슷한 느낌이다.
(3) 덕질: '덕'은 일본에서 주로 애니메이션에 심취하는 사람인 '오타쿠'에서 왔다. '질'은 뭔가를 하는 걸(쟁기질, 삿대질.....) 낮춰 부르는 말이다. 요새 취미생활을 이렇게 부르나 보다.
아이가 지금 하는 덕질이래 봤자 유튜브에서 투바투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게 전부다. 이런저런 정보는 친구들에게 주워듣는다. 음반과 응원봉도 사고 싶고, 커뮤니티도 가입하고 싶고, 공연도 가고 싶지만 엄마의 허락이나 도움이 필요하므로 눈치를 보는 중이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공부해 가며 아이의 덕질을 응원해 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