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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Mar 03. 2024

도대체 예매는 누가 성공하나

아이돌 팬미팅 예매에 도전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은 랜선 너머로 존재하는 홀로그램 같은 존재다.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투바투')의 실물을 영접하고 싶어 한다. 작년 말 콘서트는 기말고사와 겹쳐 가지 못했다. 마침 개학 직전 데뷔 5주년 기념 팬미팅을 연다. 아이에게 좋은 기회다.


투바투의 모든 팬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팬미팅은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에서 이틀간 열린다. 한 번에 5천 명씩 들어가니 모두 1만 명에게 기회가 있다. 최근에 앨범을 150만 장 팔았으니 경쟁률은 150대 1쯤 되려나?


아이는 계획이 다 있다.


"엄마, 팬클럽이 선예매한대요. 팬클럽 가입해 주세요."

"엄마, 티켓 예매 사이트 계정에 팬클럽 인증을 해야 되고요."

"엄마, 한 계정에 동시에 두 군데 접속은 가능하대요. 저는 친구랑 피시방에 갈 테니 엄마는 집에서 예매해 주세요."


"나, 나도 해야 돼?"


일단 아이를 팬클럽에 가입시켰다. (또 위버스 샵이다. 이젠 친근하다.) 연회비는 2만 5천 원. 혜택은 전용 상품 구매 기회 제공, 전용 콘텐츠 제공 등. 팬클럽 실물 카드를 받으려면 팬클럽 키트(1만 2천 원)를 따로 사야 한다. 세심한 상술이다.


아이 계정으로 티켓 예매 사이트도 가입했다. 팬클럽 명의와 다르면 선예매가 안된다. 예매 시작은 수요일 저녁 8시. 아이의 수학학원과 겹친다. 아이는 이번 한 번만 학원을 빠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설마 되겠어, 싶지만 아이는 자신만만하다. 이러고도 예매 못하면 본인 탓이지만, 학원 가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하면 엄마 탓이 된다.




이게 뭐라고 예매 당일 오전부터 긴장됐다. 자초지종을 들은 팀원들이 응원을 해줬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펼쳤다. 둘째 아이 밥은 즉석밥으로 대충 차려줬다. 


"엄마! 망했어요! 본인인증이 안 돼요!"


피시방에서 아이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예매 20분 전이었다. '비정상적인 접속이 감지되어' 자정까지 본인인증 중단이라고 한다. 예매 시도도 못하고 여기서 끝나는 건가?    


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본인인증은 휴대폰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미성년자니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계좌인증은 불가능하다. 남은 건 구전으로 전해 내려 온 '아이핀'이다. 


아이핀 가입을 위해 아이의 신상정보를 입력하는 손가락이 떨렸다. 이제 10분 밖에 안 남았다. 그 와중에 아이도 본인인증에 성공했다. 알고 보니 통신사를 헷갈린 거였다. 작년에 알뜰폰으로 바꿔줬었지. 


이제 준비는 다 됐다. 정확하다는 시계 사이트를 아이패드에 따로 띄워놓고 발을 달달 떨었다.

3,

2,

1


정각이 되자 예매 버튼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아, 일단 요일을 골라야지? 

시간은 17시 하나인데 누르지 않아도 되나?

이제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면.....


0.5초 버벅거린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매버튼을 눌렀을까..



대기 4만 8천 번대....


좌석은 총 1만 개 정도 된다고 했지? 이미 끝났네. 그나마 아이는 3 만번대라고 하지만 의미 없기는 매한가지다. 예매 화면이라도 보고 싶어서 기다렸다. 20분쯤 지나 겨우 접속됐다. 당연히 남은 좌석은 하나도 없었다. 



난 뭣 때문에 하루종일 호들갑을 떤 걸까. 확인할 필요도 없지만 아이 역시 티켓팅에 실패했다. 피시방에 같이 간 친구는 성공했다. 아빠가 표를 잡아줬다고 한다. 


패인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말고 바로 예매하기를 눌렀어야 했다. 마우스 없는 노트북보다 차라리 스마트폰이 나을 뻔했다. 아이돌 콘서트 예매 연습한다고 아무 공연이나 예매하고 바로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예 티켓팅 연습하는 사이트도 있다.


암표상들도 많았던 걸로 보인다. 한 커뮤니티의 성별, 연령별 예매자 통계 분석을 인용한다. 선예매 첫날은 남자 11%, 30대 23%였다. 애초에 남자팬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공연 전날에는 남자 비율은 2% 대로 추락했다. 30대는 12%로 줄고 그만큼 10대가 늘었다. 아이디 옮김이라는 방식을 통해 거래된 걸로 추정된다. 


암표 거래는 공공연한 문제고 방지 노력도 늘고 있지만 근절하긴 어렵다. 가수 장범준은 최근 매진된 공연 티켓을 전부 취소했다. 대신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 티켓으로 다시 발매키로 했다. 본인인증 후 구매해야 하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고 한다. 가수 성시경은 암표상의 티켓 좌석을 취소했으며, 가수 아이유는 불법 판매되는 티켓을 제보한 사람에게 그 좌석을 준다고 한다. 


이번 팬미팅은 인터넷 라이브로도 중계해 준다지만 아이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직접 가지 못하면 볼 의미가 없어요."

"엄마가 친구 아빠처럼 손이 빠르지 못해 미안하다."

"투바투가 조만간 컴백한다니 그때 다시 노려봐야죠, 어쩌겠어요. 후우~~"


또 컴백한다고? 지금까지 겪은 걸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단 말인가...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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