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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밤

당신이 불행해지길 바라기도 합니다

by 숨결
내가 줄 수 없을 때



안녕하세요 K.

피할 곳 없는 바람에 다시금 추워진 겨울날입니다. 오늘 나는 차에 넣어둔 물과 음료수들이 모두 꽁꽁 얼어버려 출근을 하면서 동네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한잔을 챙겨나오지 못한게 참 아쉬웠습니다.

당신은 출근길엔 따뜻하게 입고 나갔을까요. 이르게 저무는 밤의 밤공기에 출근길보다 저녁 퇴근길이 더 차가울텐데 따뜻한 옷과 목도리까지 단단히 입고 나가셨길 바랍니다.


내 카페로 느지막히 나와보니 옆집 미용실 사장님이 친구분과 수다를 떨고 계셨습니다. 하루 한 잔은 커피를 꼭 드시는 분인데 요즘은 매출이 너무 안나오다보니 커피 한잔까지도 부담스러우실터라 가게로 나오는 날은 스리슬쩍 한잔씩 건네드리곤 했는데 오늘은 친구분까지 계셔서 아침인사와 함께 두 잔의 커피를 슬그머니 건내드리고 뒤돌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친구분께서 서둘러 쫒아오셔서 한사코 커피값을 쥐어주시는게 아니겠어요.

몇번 인사도 나누었던 분이라 그저 가벼운 감사인사 하나면 충분했는데 그저 받는다는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음을 제가 잠시 잊었던 모양입니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

저 또한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로 부터 받는 호의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받는 순간만큼은 감사하고 휑재를 한 기분이기도 하지만 인연이 그때로 끝날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나 또한 갚아야만 한다는 마음 또한 빚을 진듯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사정에 따라 그 빚을 갚을 수 없을 때는 그 빚진 마음이 더더욱 무겁게 나를 짖누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받기보다는 주는 쪽을 선택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K. 당신도 이런적이 혹시 있을까요.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를 받지 못할 때보다 주지 못할 때가 더 괴롭기도 합니다.

단편적으로 얻는 것보다 내가 당신에게 무언갈 줌으로써 이후에 얻게될 것이 훨씬 더 크기때문일까요.

기대를 할 수 있는 미래가 그려지는 감동과 당장 한 순간만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차이이려나요.


당신을 만나기 전 나라는 사람은 나 하나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단 마음은 많았지만 내 곁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럴싸하고 구체적인 목표따위는 내게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항상 그토록 대책없는 삶을 살았나봅니다.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의 시간이 쌓여가고 당신을 향한 마음이 깊어지고 또 깊어질 수록 헛된 망상에 가득차 있던 나는 현실로 눈을 돌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졌습니다. 너무 많이 늦었지만 내가 돈이란걸 제대로 벌어들이고 모으게 된 이유이기도 했지요.


늦어도 너무 늦었나봅니다.

정말도 당신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나는 때맞춰 건내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건 알량만 마음과 입에 발린 헛된 말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도 괴로웠습니다. 나를 위함이 아닌 오롯이 당신을 위한 '주지 못하는 마음'이란게 이토록 힘든 일이 될 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나의 몸이라도 팔아버렸을 것입니다.


뒤늦은 후회 속에서 나는 또 못된 상상을 하곤합니다.

당신이 나보다 못난 사람이었다면 내가 줄 수 있는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있었을텐데. 하고 말입니다. 당신에게 피해가지 못할 불행한 시기가 찾아온다면.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어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더욱 깊이 슬퍼지고 더 많은 후회와 고작 이따위 후회밖에 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걸 하렵니다. 잠들기 전 신께 어떤 불행도 당신의 주변을 맴돌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소망합니다. 혹여나 당신이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을 때가 있다면 그 순간 만큼은 내 등에 기대어 달라구요.


오늘의 못난 고백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밤은 가득찬 달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맑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당신도 저 달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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