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를 하루만 비워주시겠어요
그 자리를 하루만 비워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히 무언갈 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자정에 깨어버려 새벽 두시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일어나있습니다. 습관인건지 초저녁에 기왕 잠이 들었드니 조금 이른 아침에나 깨었으면 싶은데 늘상 자정전에 눈을 뜨고 이도저도 아닌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침대에서 한참을 게으름을 피우다 컴퓨터를 켜고 당신에게 오늘도 편지를 씁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한국 인디 명곡'을 추천해 주었고 지금은 커피소년의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노래가 주는 위안이란 지금 내게 없는걸 이야기 해주기 때문에 또는 내 마음을 대신해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고마워집니다.
내 편이란게 없습니다. 여지것 K 당신만이 나의 편이라 몹시 깊이 학습해왔던 시간의 산물입니다.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참 많지만 지독히 외로운 감정은 내 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국은 나의 문제입니다. 마음에 빗장을 걸어잠그고 두드리는 객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없음으로 '여긴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가 봅니다. 허기사 한 평생을 허세와 밑도 끝도없는 자신감으로 살아왔으니 몸에 배인 본새가 이젠 내 얼굴이되었습니다. 어제는 옆가게 미용실 사장님이 급히 찾기에 나가보았더니 왠 여자분이 앉아계셨습니다. 가게를 찾던 단골손님이었나본데 왔다갔다 일면식이 있던 분이셨습니다. 무슨일인고 하니 사장님께서 저와 그분이 연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인사를 시키고 거절하기 무안한 분위기로 연락처까지 교환하도록 하셨습니다. 멋쩍은 마음에 몇 마디 인사만 나누고 핑계를 대어 매장으로 서둘러 들어왔습니다.
실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바라는 분들이 종종 말을 꺼내주시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인연은 나에게 너무 이른 모양입니다. 설레임도 기대도 갈망도 불어오는 바람에 날릴 티끌하나 없는 고요함만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나의 다짐이야 어떻든 당신의 빈자리를 채워보고자 할만도 할텐데 나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처럼 오직 하나의 물 웅덩이만을 갈망합니다. 목마름이란건 처음엔 '물이 있었으면'하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하지만 갈증이 심해져 고통스러워질 때면 많은 것들이 생각납니다. 가족, 연인, 친구, 좋아했던 음식, 편안한 침대 등등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지나면 다시 한 모금의 물만을 갈구합니다. 그 어떤 소망보다도 간절히요.
나는 아마도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헤매이고 헤매다 나는 당신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뤄지지 않기에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사막의 밤 하늘에 떠오른 별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자 합니다. 타는 목마름에도 별은 참 아름다울겁니다.
그런 마음이기에 감사한 그 분들에게 멋쩍은 웃음으로 조심스레 부탁해봅니다. 제 마음의 빈자리에 아무도 안지 않도록 해주실수 있느냐구요. 딱 하루만이요. 내일도 하루. 모레도 하루. 오늘이 되는 모든 하루들을.
내일 커피 한잔을 건내드리며 미용실 사장님께 말해봐야겠습니다.
'하루만 이 자리를 비워 주시겠어요. 가능하다면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새벽이 너무 깊어집니다. 내 마음이 해가 뜨기 전 어둠처럼 너무 깜깜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금요일에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