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했습니다
술 한잔 했습니다
술 한잔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가락시장 수산물센터에는 두려움을 잊은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나 역시 얇은 마스크 한장을 부적마냥 맹목적인 안일함으로 두려움을 잊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려 서성입니다. 술 한잔 했지만 고작 맥주 한잔으로 겨우 목을 축인지라 감히 취하지를 못했습니다.
취하지 못했지만 취한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술이 없어도 취한 채 살아갈 수 있어 술을 멀리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그와는 다른 이유로 술을 마시게 되기도 합니다.
시장 어느 자리에 앉아 당신이 좋아하던 회를 먹었습니다.
나는 또 미안해졌습니다. 실은 저는 회를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가진 순위표에서 회를 먹는 식사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는 당신과 회를 앞에 두고 함께하는 시간을 피해왔습니다.
한번만이라도 더 먹을걸 그랬나봅니다. 그랬다면 익숙한 곳을 익숙하게 만들기 보다 낯선 곳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을텐데요. 조금 더 먼 곳으로 당신과 떠나볼 수 있었을 텐데요. 그게 싫었다면 당신의 집 앞 작은 가게에서 익숙한 곳을 익숙하게 만들수도 있었을텐데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신나하는 당신을 한번 더 마음에 담을 수 있었을텐데요.
살짝 취해 말이 많아지던 나를 좋아했던 당신입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당신이 좋아하는 조금 취한 나를 보는 당신이 보고싶은 별이 보이지 않는 밤입니다.
K. 나는 두렵습니다. 겁에 질려 울고있습니다.
나는 두려움을 잊었고 당신에게 가질 두려움을 두 눈을 감고 외면한 채 지내왔습니다.
우리의 마주칠 수 없는 연이 시작된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는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당신 역시 그리움에 빠져 있을거라 여겼지만 이미 당신은 나를 까맣게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걸 취하지도 않은 한잔의 술에 깨달아버렸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시간과 당신이 바라보는 시간이 같지 않음인데 나는 나만의 그리움에 취해 당신의 그리움을 내 멋대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모순적입니다. 나라는 사람은요.
당신이 나를 잊고 파랑새를 만나 새로운 행복을 찾길 바라건만 나를 잊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당신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나를 위해 나보다는 조금만이라도 아파해주길 갈망합니다.
오늘 한잔의 술에 깨달음이 찾아왔고 깨달음 뒤엔 아픔이. 아픔 뒤엔 눈물이. 눈물 뒤로는 너울이 지나간 잔잔함이 남았습니다. 이제 나는 소리없이 고요히 우는 법을 배웠나봅니다.
오늘은 모든 모순을 버리고 기도하겠습니다.
따듯하세요. 당신의 좋은 사람들과 웃어주세요. 나를 잊어 주세요. 나를 그리워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게 당신을 닮은 파랑새가 찾아들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