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
따뜻한 겨울
눈을 뜨고는 제가 겨울잠에라도 들었던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버린 꿈인걸까 창을 열고 멀거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카페를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인데 본래는 세 명이었지만 연이 오래 닿지 못한 하나가 빠지고 둘을 만났습니다. 사연이 많은 셋이 만났던 것인지 아주 오래토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른 점심무렵 만나 이름값이 꽤 있다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간것인데도 앉아있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만에 자리들이 가득 차는걸 보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곳이구나 했습니다. 탁자에 올라오는 열가지가량의 찬들이 다채로운 색과 향을 풍기고 그릇을 하나 더한 고기반찬이 탐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입에 담기는 음식들 모두 부족함이 없어 더 없이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식당의 길건너에는 융릉과 건릉이 있었습니다. 익히 서울과 서울 근교의 능들을 다녀보았던지라 능이 있는 장소들은 조용하고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을 알고 있어 산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따뜻해진 날이구나 싶어 그리 두껍지 않은 외투를 입었는데 아침에 맞이했던 햇살보다도 따뜻해진 정오의 볕은 그나마의 옷을 어깨아래로 내려 반쯤 걸치게 만듭니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아직 새순이 돋지 못한 키큰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이 간지럽습니다. 이런 날 말동무가 되어줄 사람이 옆는 기분도 간질간질합니다.
셋은 경치보다도 서로의 눈과 얼굴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바람소리와 나무가지들이 춤추는 소리,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보다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던 시간들입니다. 오늘처럼 나란히 걷는 발걸음 소리가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화에 빠져드느라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살피지 않아 한참을 돌아돌아 길을 걸었지만 누구하나 불만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걷는지, 걷느라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오늘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우리는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게 중요했으니까요.
당신과 보냈던 시간이 그랬습니다.
되려 야속하게 떠오르는 달과 기다려주지 않는 막차시간을 미워했습니다. 간간히 피곤함에 돌린 이른 발거음이 지금은 그리도 미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마음과 지금의 후회는 고작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서 물들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마음을 고작 외로움이란 단어로 빈 자리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내게 유일하게 '그저 같이 있어서 좋다'라고 말해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함께 있음이 어떤 시간보다도 충만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 사람이었습니다. 많이도 늦었지만 그보다 소중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나는 알게되었습니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우리는 네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가 비워지도록 끝이 나지 않아 한번 더 음료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해 저수지의 산책길을 걸으며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밤 공기에는 아직 겨울 냄새가 남아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손 끝이 시려워왔던걸 보니 말입니다.
지금처럼 편지로 쓰는 말들을 마주앉아 나누는 꿈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오늘 밤 꿈에는 당신을 만나고 싶네요.
당신에게도 오늘 하루가 따스함으로 가득찼었으면 합니다.
좋은 꿈과 함께하는 밤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