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기도
정오의 기도
어제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는데 오늘 아침 평소보다 늦게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몸이 좋지 않단 핑계로 이래저래 미뤄둔 것들에 맘이 급해져 겨우 몸을 일으켜 지난 밤 묶은 먼지를 씻어내며 창을 열었는데 볕이 그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책상에 앉으려 했던 마음이 흔들려 밖으로 발을 내딛어 보았습니다. 일전에 올랐던 뒷산으로 갈까하다 그래도 책상위로 미련이 남아 멀리 떠나지는 못하고 산 아래 절 마당으로 산보를 나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절을 좋아합니다.
대게 고즈넉한 산기슭이나 산중턱에 자리잡아 산인듯 산처럼 자리잡은 사찰에서 나는 그저 한그루의 나무요 한덩이의 돌이요 지나는 한마리의 풍뎅이가 되는 평안함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절보다는 교회를 자주 나갔습니다. 조용한 곳에서는 외로움이 소중한데 번잡한 곳에서는 사람이 되려 그리워져 그리되었습니다. 그리하다보니 당신과도 함께 교회를 다닐 수 있게도 되었지요.
뒷산 아래의 절은 그리 크지 않은 절입니다. 그치만 나름 갖출것들은 갖추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고 우편으로는 관세음보살과 인등불을 모신 인등각이 있습니다. 대웅전 뒷편 계단을 오르면 산신을 모신 산신각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절에 산신이라니 신기하지요. 불교가 들어오기전에는 토속신앙을 믿던 나라였기에 매몰차게 무시하지 않고 이처럼 함께 모실 수 있게 하였던 역사가 있는거랍니다.
대웅전과 인등각 사이 야외에는 미륵존불을 모시는 미륵전이 있는데 왠 젊은 청년이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런 궁금증 보다는 나는 오늘도 추억에 잠겨봅니다.
언제인지도 모를 기억입니다. 당신이 다니던 큰 교회의 지하에는 큰 기도실이 있었지요. 그 어두운 곳에서 기도를 드리던 당신이 기억납니다. 실은 너무 오래되어 당신인지 확실하지도 않지만 내 기억에는 그렇게 짜맞추어 이야기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대답했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나도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기도를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나의 기도를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신에게 기도를 해야할까요. 별님에게 달님에게 해야하는 걸까요. 어느 곳에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를 하는 중에 마음이 아파 눈물이 기도를 멈추어 버려 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도 별님을 생각해도 달님을 생각해도 당신이 떠올라 숨이 막힐듯 심장이 멎을듯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볕이 좋은 대신 바람이 조금 세찹니다. 탓에 사찰의 처마에 달린 풍경소리가 어지럽습니다.
나는 어디에 마음을 빌어야 할까요. 갈곳 잃은 도래낸 가슴 조각을 꺼내 어루만져 봅니다.
볕을 바라보니 눈이 부셔서 그런지 눈물이 자꾸 흐르네요
나이든 눈물 부끄러워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