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성격책
때 묻지 않은 성경책
유레카
매장을 정리하다 구집사님께서 주셨던 성경책을 발견했습니다.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있지만 손이 닿지는 않는 곳에 있어 으레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무심한 무언가로만 보아왔나봅니다. 소풍날 보물찾기에서 수풀에 숨겨진 쪽지를 찾아낸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성경책을 챙겨 집으로 가져와 좋아하는 선반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꽃과 함께 얹어두었습니다.
성경책에는 어느곳 하나 때 묻은 구석이 없고 주름진 곳 하나 없습니다. 몇번 제대로 펼치지도 않아 책등은 뻗뻗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말이지 새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성경책을 건내 받고도 당신과 예배당을 수 년은 다녔던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단 두어번 정도 성경책을 직접 들고 갔었던것 같습니다. 나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지 않았지요.
왜 그랬는지 당신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무겁고 귀찮아서 가져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겠구나 내심 짐작합니다. 물론 그 이유가 없다고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그보다 우선이었던 이유가 나름 있었다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는 굳이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경건한 마음과 예의를 지키는 소년의 마음이 되어 굳은 자세로 앉아 있곤 합니다. 그래서 각자 깍지낀 손으로 기도를 하거나 성경책을 손에 들고 있지요.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성경책을 함께 보면 말이에요. 당신의 옆에 아주아주 가까이 붙어 앉아 머리를 가까이 맞대고 성경구절을 읽고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당신이 성경구절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훔쳐보거나 떨어져서는 들을 수 없는 숨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래서 내 평생 교회를 다니던 삶 중에서 가장 즐겁게 다녔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예배당으로 이끄셨다고 나는 믿었습니다. 헌데 이제는 내 곁을 떠나셨기에 나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면 떠오르는 당신과의 추억에 마음이 아파 버티지 못함도 한 몫이고 원망스러움은 열몫입니다. 나는 분명 그분을 사랑하지만 토라진 아이처럼 그분이 원망스러워 눈물짓고 소리치고 뒤돌아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언제 그분은 다시 당신의 모습으로 나를 다시 찾아와 주실까요. 다시 찾아오시기는 하실까요. 나를 다시 당신의 품으로 인도해 주실까요.
언젠가 다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햇살이 따뜻한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와 당신과 소풍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 날에도 성경책은 한권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