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아직이라 말했다
바다는 아직이라 말했다
속초 바다에 다녀왔습니다.
이곳 역시 당신의 흔적이 모래사장에 배어 있는 곳입니다.
함께 왔노라 모래위로 우리의 이름과 그날의 날자를 적었던 글자는 지워졌지만 모래 위를 걷던 우리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환영처럼 나에게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 도착한 해변에는 다가온 여름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앉은 청춘남녀들과 밤바다를 거니는 연인,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사이를 유령처럼 푸슥 푸슥 모래를 밟고 파도 소리를 따라 갔습니다.
파도는 잔잔했고 모래는 적당히 차가웠고 등대는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파도의 끝자락에서 세발자국정도 떨어진 곳에 철푸덕 앉아 하염없이 파도소리만 들었습니다. 해변에 흩뿌려진 조개껍데기 중 하나인양 나는 그곳에 존재했습니다.
쏴아아.
잔잔한 파도 위로 큰 파도 한번 덮여질때마다 한번의 질문들 던집니다.
'나는 어떡해야 하나요.'
파도는 대답할리 없습니다.
K
내가 밤바다를 찾은 연유는 최근들어 찾아온 불안 때문에, 그리고 무너진 마음이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면 평생을 괴롭혀온 그 질문이 나를 쏘아대고 쪼아댑니다.
'구태여 왜 살아야 하는가.'
물론 나는 이미 죽은것과 다를 것 없이 살고 있기에 질문의 답을 찾는 것에 그렇다할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삶의 이유는 K 너야.'라고 했던 그 때의 답은 길을 잃었고, 나는 상실감을 채우지 못한 가녀린 어린아이가 되어 울고 있을 뿐입니다. 실컷 울고나면 지쳐 잠이들고, 아침이 되면 또 한번 당신이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어차피 답은 아직도 K 당신입니다.
지금와서의 고민은 그 답을 살아 숨쉬며 간직하는가 아니면 잠들어 잊혀진 모습으로 간직하느냐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거든요.
오늘 바다 위로는 번뇌의 별이 깜박입니다.
별빛이 괴로워 모래를 딛고 일어나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쉴 때 파도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직'이라구요.
그래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지금이든 나중이든.
다음에 바다를 찾게 된다면, 그 이유는 또 다시 찾아온 불안에 의해서 일까요. 아니만 불안마저도 상실되어서 일까요.
그건 그때가 되면 알겠지요.
K. 나는 이만 근처의 싸구려 모텔을 찾아 잠을 청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불안과 상실과 번민을 안고 또 눈을 뜨겠습니다.
오늘밤 당신은 하늘처럼 맑은 바다에서 뛰어 노는 꿈을 꾸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