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두번째 밤

실은 부러워서 무서웠던거지

by 숨결
실은 부러워서 무서웠던거지





K 당신의 아버님이 처음으로 나를 술자리에 앉혔던 날

나는 화가 났지만 내심 부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님은 그러셨거든요

"너는 안 돼. 우리집은 K의 엄마가 최고야. 내 마누라가 싫다면 너는 안되는거다."


그 말의 앞 뒤로

나는 사업을 하는 놈이기 때문에, 내가 경상도 놈이기 때문에라는 이해하기 힘든말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태평하던 당신의 태도에 화가 났었지만

그 뒷편에서 나는 당신의 가족이 참 부러웠습니다.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사는 당신의 아버님과

그 안에서 한없이 화목해보이던 당신의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무서워졌던것 같습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으니까요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이상이란건 결국 그때의 나는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지금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왕래가 잦아질수록 나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과연 내가 당신의 가족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걸까?

잠깐의 만남들에서야 얼마든 나는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로 활약할 수 있었지만

나의 민낯은 언제고 가면이 벗겨져 들통나버리진 않을까?


그래도 덕분에 나는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물들어나갈, 닮아갈 가족이 당신의 가족이었으니까요

할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두려움이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적어도 나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당신을 잃었기에

빛과 같던 기회를 잃고

너무나 나답게 외롭고 적막한 혼자라는 가족의 모습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당신은 장난스레. 반쯤은 진심으로 항상 말했지요


"밥은 오빠가 해야해. 가끔은 나도 하겠지만."

"빨래도 오빠가 해야해."

"항상 일찍와서 같이 저녁을 먹어야해."


나는 퉁명스럽게


"어떻게 그래. 같이 해야해."라고 말했지만


사실 모두 제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그렇게 당신과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떠나간 기회의 여신이여

K 당신을 그리워하며 떠나간 기회마저도 함께 그리워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예순한 번째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