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세 번째 밤

무덤덤한 바람이 부는 밤

by 숨결
무덤덤한 바람이 부는 밤




여전히 낮에는 덥고 습한 날들입니다.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 아래에 있으니 그다지 힘들 것도 없는 날들이지만

하늘하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기분이 그리운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자정이 넘은 시간쯤이면 솔찬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집에는 잘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만

작은 산 중턱에 자리잡은 제가 사는 동네는 시원하다 싶을만큼이 되어

어제는 잠들지 못하는 밤

산책을 핑계로 밖으로 나가 달과 별이 전해주는 바람을 만났답니다


오늘. 지금 새벽 한시는 서울의 한복판에도 괜찮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한강을 가볼까 근처 공원을 나가볼까 고민되는 밤입니다.


나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인 매장에서 아무도 걷지 않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골목을 바라만봅니다.



이제 나는 꽤나 무덤덤해졌습니다.

종일 당신 생각에, 그리움을 가슴에 메어두고 살던 날들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모양입니다.


헌데 나는 자꾸만

'내가 왜 지금 아무렇지도 않지?' 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시 당신을 떠올려버리고 말아버립니다

그러면 나는 언제 괜찮았냐는 듯 아릿해지는 가슴에 울적해집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극단적인 감정기복에 시달리면서도

이제는 무덤덤해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당신의 빈자리에 익숙해져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갑니다


그리곤 그 다음이 궁금해집니다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는 나는 무얼 해야 할까요


사실 당신을 만나기 전 계획했던 나의 삶과

당신을 만나고 난 이후의 내 삶의 방향이 너무나 달라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어져버린 돌멩이같은 모습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덤덤히 그들을 맞이하는 돌멩이지요


새로운 인연을 만나볼까요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까요

낯선 곳으로 떠나볼까요

지금처럼 돌멩이처럼 살아갈까요


결정을 내려줄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밤. 무덤덤한 바람이 곰질거리며 서글프네요


K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금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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