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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by 숨결
주전자




오징어 배 조명 빛 뒤로 해가 머리를 들지도 않았지만 세상은 어스름 새벽으로 감싸 안아진다. 어머니는 그런 새벽마다 항구로 나가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크기가 작거나, 사람들이 먹지 않아 버려지는 잡어 따위의 생선들을 주워오곤 했다. 나는 걔 중에 봄철 검은 봉지 한가득 멸치잡이 배 옆에서 그물을 털다 떨어진 멸치들을 담아오는 어머니를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길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봄 한켠에 몰래 숨어있는 겨울바람을 헤치고 주워온 멸치를 놋쇠 화롯불에 구워주거나 시래기와 된장에 넣어 국을 끓여주기도 했다.

“어매. 있나?”

“...왔나?”

그녀는 언제나처럼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주전자 주둥이에서 아지라이 피어나는 수증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의 탁자 위에는 채 손질을 끝내지 못한 미역 꼬다리들이 작은 산을 이뤘다.

어머니는 한사코 염색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언제부턴가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아져 버렸다. 반평생 허드렛일로 푼돈을 모으고 또 모아 고작 네 개의 탁자가 전부인 작은 식당에서 늘어나는 흰머리의 세월과 함께 십 수 년을 보내는 그녀에게 왜 염색을 하지 않냐 언젠가 물었던 적이 있다.

“사람이 늙으믄 늙어가는대로 살아야지 뭐 이뻐지겠다고 색을 쳐 발라싸코 그카노.”

짜디짠 바닷바람과 날 것 그대로의 볕을 받아내며 험한 세월을 고스란히 버텨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빨리 늙어가는 어머니가 내심 속상했지만 단 한 번도 그 말에 반박해본적은 없다.

“밥은 뭇나. 상차리주께 밥 무라.”

“그라모 도루묵찌개 있음 그거나 쫌 두가.”

“그기 묵고싶드나. 니 좋아하는 맬치 갖다놨는데 그 같이 꾸버주꾸마.”

주방으로 들어간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등유 난로 옆으로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아 주머니 속에서도 녹이지 못한 손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펼쳐낸다. 이 난로 또한 식당과 어머니와 함께 세월을 보내며 어느새 멀쩡히 칠해진 곳보다 녹슬어 칠이 부스러져 내리는 거친 갈색빛이 더 많아졌다. 그 위로는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바닥엔 닦이지 않는 타버린 검은 검댕이 가득인 낡은 양은주전자가 보리차를 따뜻하게 품고 있었다. 언젠가 듣기로 아주 옛날 양조장을 했던 외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재산을 다 뺏긴 뒤, 곧 죽을 사람 같은 표정으로 돌아올 때 가져온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떠돌고 집안의 물건을 팔아치우면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주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그 주전자를 소중히 대하거나 애지중지 다루지는 않았다. 그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마냥 그녀의 곁에 치이는 삶으로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내 저번에 갖다 준 주전자는 어쨌노?”

“잘 있다.”

“아니. 쓰라고 갖다줬드마 어따 쳐박아놓고 이거를 아직도 쓰고 있노.”

“아직 쓸만한긴데 와 니는 자꾸 갖다 버리라카노.”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그 양은 주전자의 보리차를 잔에 따라 두 손으로 감쌌다. 적당히 따뜻한 보리차를 홀짝이다보니 시선이 난로 위의 주전자 뒤로 주방의 어머니가 겹쳐졌다.

‘아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주전자를 바라보며 혹시 그녀 자신을 투영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흔하디흔한 양은 주전자를 귀하고 특별히 여겨주는 이는 없었을테다. 적당히 쓰다 찌그러지고 칠이 벗겨질 때가 되면 버려지는 그런 존재. 언제부턴가 스테인리스 주전자들이 주방을 점령하고 막걸리집들에서나 쓰이는 하찮은 주전자. 언제든 버리고 바꿀 수 있음에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막연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어설프게 정들어 버린.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과 닮은 낡은 주전자를 차마 버리지 못했음이 아닐까.

“밥 묵고 가게 닫아뿌고 내랑 나가자.”

“어델? 만다꼬. 할 거 많다.”

“대따. 낼 하믄 댄다 아이가. 가자.”

그녀를 미용실로 데리고 가야겠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저 낡은 주전자와 당신이 겹쳐 보이지 않도록 검은 머리로 염색을 하고 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을 사야겠다. 당신의 삶은 칠이 벗겨지고 찌그러진 주전자와는 다르다고 전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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