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그리운것들도 지치면

일흔세 번째 밤

by 숨결
슬프고 그리운것들도 지치면





안녕하세요

오늘도 참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간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중간중간 쓰다만 편지가 몇통 있었습니다

한 동안 저도 모르게 많이 바빠져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이 드물어졌고

그 와중에도 써보려 노력했던 것들은 고작 쓰다만 글로 남겨졌습니다

남겨진 글들을 나중에라도 이어 써볼까 했지만 그날의 일들을 그대에게 고하고자 했던 제 맘을 속이는 것만 같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바빴던 일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벗어난 하루들이었습니다

엄마와 이모들을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왔고

매장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고

간단한 알바거리 때문에 먼 길을 운전해 다녀와야하기도 했습니다

왜 모였는지 모를 제 사람들과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지요

왜인지 그러면서 마음이 몹시 편해졌습니다


덜그럭거리며 가슴속을 굴러다니던 모나고 거친 돌들이 오랜 시간

파도에 마모된 자갈들처럼 매끈해졌나봅니다

아니면 뜨겁고 거센 바람에 아주 고운 모래로 부스러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들 사이에 밤하늘의 별들과 눈을 맞추다 나도 모르게 피어오른 생각이 있었는데요

'나는 이제 슬프고 그리운것들에게 마저도 지쳐버린게 아닐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둔 밤하늘은 제가 가여웠는지

밤 하늘 별들 중 하나를 내려보냈고

그 별은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어 저에게 새로운 연인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써야할까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전할 이야기에 당신을 그리워하는 글이 아닌 것을 써도 괜찮은 것인지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써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었거든요


결론은 이렇듯 이야기를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채우고자 했던 백번의 편지를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이제는 당신을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소식이 아니라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저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는 소식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백번째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것인지 저 역시 궁금했습니다

그저 백번이 아닌 평생동안을 당신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으로 채워질 것인지

그리움 마저 포기한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시간을 그려 보내게 될지

아니라면 혹시나 당신을 잊고 살아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것인지를요

아직도 그 끝은 모르지만 당장의 현실을 바탕으로 예측해보건데

당신을 잊고 살아가는 결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을 닮은듯 했지만 당신과는 너무 많이 다른 사람입니다

언제 다시 편지를 쓰게 된다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황무지 위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폐허가 되어버린 제 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사람입니다

이제는 어떤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뒤로 물리고 오직 이 꽃 한송이를 소중히 보듬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낼것입니다

남은 편지를 보내는 동안에 이 꽃을 위한 아침과 낮과 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 편지를 날려보내겠습니다. 마치 당신을 사랑했던 그 날들과 많이 닮았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이 꽃피길 바라며 오늘의 편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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