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세 번째 밤
추억일 때 아름다운 것들
전화가 올땐 어떤 소리가 울리나요
'따르릉' 소리를 들어본지가 언제였던가요
아주아주 먼 옛날 들렸던 전화 소리는 시대가 변하며 언제인지도 모를 추억이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전화벨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해가 바뀌어서 그러는 것인지, 세상에서 한발작 물러서 언제고 뒤돌아 떠날지 모를 제가 궁금해서인지
과거의 인연들로부터 연락이 잦아진 요즘입니다. 잊혀짐의 경계에서 먼저 손을 놓아두고 있던 제 입장에서는 연락을 받게 되면 몹시 죄스러운 맘이 앞서게 됩니다. 몰래 그대들을 잊어버리려고 신발끈을 묶고 있다 들켜버린 기분이거든요.
어제는 절 아껴주는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고 '연락도 하지 않는 후배'라고 핀잔을 듣기도 했답니다. 그 선배에게는 먼저 연락을 해야지 해야지 생각했던게 한달이 넘어버린 참이었던지라 죄송한 마음은 한참이나 무거웠습니다. 먼저 찾아준 선배의 관심에 괜스레 울컥해져 빗장을 걸어두었던 속내를 슬쩍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형. 미안해요. 제 맘이 쪼그라져 있어 밖으로 잘 나가질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저 역시 형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새로운 인연도 과거의 인연도 부담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인연이란 틀 안에서 벗어나려고 부던히도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이런 제 태도는 그저 '나 살기도 바쁘니까.'라는 이유에서 비롯되어 인연들에 소비해야할 제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아끼기 위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연락을 받고, 내뱉은 말을 머리속에서 되새김질 하다보니 그 때문만은 아니란걸 알아버렸습니다.
분명 저라는 사람의 특징은 언제 만나도 즐거울 수 있는, 편안할 수 있는 사람은 것은 명확합니다.
선배보다 며칠 앞서 연락이 왔던 지인은 얼굴을 맞댄지 7년만었음에도 항상 만나던 사람을 만났것 마냥 편하고 즐거웠노라 신기해할 정도였고, 이런 이야기는 그간 살아오면서 많이도 들어왔던 말이니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당장 누굴 만나고 누군가와 연락을 하든 눈앞에서 맞이한 시간이 답답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네들은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년을 이야기 하고 있는 지금에서 하룻밤의 술한잔과 넋두리가 채워주는 것은 없다는 걸요. 하룻밤의 유희가 즐거웠던 시절은 십수년 전 한참 전에 지나가버렸다는 것을요.
때문에 저라는 사람을 만나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의 아주 옛날 기억하고 있던 감정일 것입니다. 서른 후반과 마흔을 넘어버린 만남에서는 그대들이 기억하고 있는 감정과의 괴리가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 예전에는 만나고나면 마냥 즐거웠는데. 지금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어야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K
우리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을 떠나는 일은 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느 카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상상 속에서 즐거울리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함께 바라보던 곳으로 걸어가다 갈림길에서 헤어지게 되었고, 갈림길은 영원히 마주치지 않을 더 먼 곳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서로 다른 세상으로 향하며 서로가 닮았던 우리는 이제 점점 더 낯선 사람이 되어갑니다.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추억이 소중했고, 사랑스러웠음이 지금의 시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리 만무하겠지요.
오히려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로 만나게 된다면 그 소중했던 추억마저 훼손될까 걱정스럽습니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이제 추억의 이름으로서야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가진 유일한 반어법은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이란 이름 안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