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

여든두 번째 밤

by 숨결
봄이 오기 전,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





영화를 자주 봅니다

영화관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OTT 서비스를 이용해 이것저것 찔러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영화관을 가는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가 궁금하기 보다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즐기기 위함의 목적이니 여전히 영화관을 직접 가는것이 훨씬 맘에 듭니다


얼마전에는 아직 흥행하고 있는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을 보고 왔습니다

극중에서 여주인공 미쉘 존스역으로 나왔던 젠데이아의 대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실망할걸 예상하면 덜 실망하게 된다."


슬퍼하지 않고, 눈물 짓지 않으며 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조언입니다.

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성공에 인색한 내 인생에서 버텨내기 위해서 저는 항상 실패에 익숙해야했고 실망의 굴레의 노선을 외워두어야 했습니다


분명 아주 어리고 젋었던 시절에는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세상이 말해주는 현실은 '너느 함부로 무엇이 될 수는 없다'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한정적'이라고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랑에 실패하고,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크고 작은 사업적 성과에 실패하고, 학업적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하물며 오늘의 메뉴나 마셔보려고 했던 주량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실패라는 것는 나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성공은 어쩌다 길을 잃은 행운의 여신과의 마주침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남자의 삶은 그렇게 무기력해지고, 무가치해지고, 무의미해져갔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망할 것을 알고 있다고하여 덜 실망하게 되는 것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야금야금 좀먹어가며 텅 비워져가는 일이었던 것이구나 싶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은 그런 제게 있어

돌담에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길 잃은 겨울산에서 발견한 산장지기의 온기가 머무는 산장이었습니다. 떠도는 영혼이 안착한 어머니의 뱃속이었습니다.


삭막하게 얼어버린 겨울 땅 위로 무심하게 찌르는 겨울눈이 쌓이면

겨울 눈을 이불삼아 그 아래에서 꽃이 필 수 있음을 일깨워준 인연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희망마저 지나흘러 맞이한 당신과의 이별이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실패였을 것입니다. K 당신과의 헤어짐 이후 나는 몹시도 무너졌고 깊게도 아팠으며 오래도록 그리움에 빠졌음이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하게는 이어져버린 실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저는 그 안에서 조금은 다른 빛을 보았습니다


제게 실패는 그저 버티고 지나가길 바래야하는, 청춘과 젊음이란 이름 아래 이겨내야만 하는 빛이 들지 않는 길고 긴 터널과도 같았다면 당신은 그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촛불을 손에 쥐고 나타난 소녀 얼굴의 천사였습니다.


네. 실패 속에서도 사랑이 싹을 틔워낼 수 있음을 알려주었던 것이지요.


창업을 하겠다는 알량한 객기로 보낸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청춘은 저물어가고 빚은 늘어만가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음에도 괜찮다고. 잘 해낼 수 있을거라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당신은 존재함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아마도 눈 아래 씨앗이 보았던 눈 이불 아래도 스며들었던 햇빛이 이러하지 않았을까요

싹을 틔운 씨앗이 줄기를 뻗어내고 꽃을 피워 세상에 그의 빛과 자태를 뽐내었을 때,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속 그의 꽃분을 어디론가 옮겨줄 벌도 개미도 어떤 벌레도 없기에 그대로 시들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가 이리도 일찍 꽃을 피운 것은 누구보다도 먼저 꿀벌을 맞이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봄이 오고 눈이 녹아 땅과 나무 속에 잠들었던 이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내가 너희를 위해 봄의 얼굴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해 놓았노라." 자애롭게 미소지을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알려준 희망으로 저는 사랑을 하렵니다

당신과의 헤어짐이라는 절망과도 같은, 종말과도 같은 실패 속에서도 당신이 보여주었던 희망의 빛은 피어날 수 있단 걸 저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요. 아직도 저는 어두운 터널을 더듬을 벽조차 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누군가 또 다시 빛을 들고 찾아와 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세상의 빛도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K

언젠가 제가 그 세상의 빛을 만났을 때

그 순간 제 옆에 있는 사랑과 손을 잡고

당신을 만났던 어둠 속으로 세상의 빛을 들고 찾아가 한 송이 꽃을 두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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