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한번 째 밤
나태한 인생. 안녕하세요 김나태씨
오전 10시에 방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고급스러운 엔틱 스타일의 6인 식탁을 역삼동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지난밤에 똑똑하지 못한 머리로 계획을 잡아보면, 아침 출근시간 길막힘을 생각해 여유롭게 도착하려면 7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8시에 출발을 해야지 싶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서울은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거든요.
평소엔 10시나 11시에 집에서 나가는 일정이니 천금같은 아침 두 시간의 휴식을 잃었습니다. 거기다 무거운 가구를 운송기사님과 둘이서 옮겨야하니 신나는 하루는 분명 아니었을겁니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평소 하지 않던 육체노동이 겹치니 괜스레 심통이 나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피곤하니까 그럴만도 하겠다 싶지만 사실 별로 피곤하진 않았습니다. 짧은 잠이었지만 깊이 잠들었었고 간만의 육체노동은 오랜만에 기분좋게 운동한 느낌이기도 했으니까요. 심통이 난 저는 운반을 마치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매장으로 돌아와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채 불도 꺼놓고 한시간여를 뒹굴거렸습니다.
가끔은 정말 피곤해 기절하듯 쓰러질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심통을 부리듯 게을러질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짜증이 난 척 하면서 게으름을 피울 합리적인 이유를 찾은 것이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합리적 이유를 찾아내며 게으름을 피워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무언갈 하는 척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어. 이건 게으름을 피우는게 아니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거야.' 라고 우기는 것처럼요. 사실 다른 바쁜 일들을 하기 싫어 가장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있는 주제에 말입니다
사업이란걸 그만두면서 내가 바빳던 적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보니 딱히 그런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머리도 게을러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마저 게을러진게 아니라면 그런 기억은 없는게 분명합니다. 그나마도 바빴었구나 했었던 날들은 나 스스로 욕심을 부려 일을 벌려두었던 것들이라 그 어떤 시간에 쫒길 필요없이 '그만할래'해버리는 순간 끝나는 일들이었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나라는 사람은 참 쥐뿔도 없으면서 나태하게 살고 있습니다. 얻고 싶은것은 한가득이면서 그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함께 일해야만 하는 회사나 단체에서가 아니라 혼자서 일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누군가의 압박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이렇게 나태하게 만들어버리기 쉬워집니다
주제에 참 편안하게도 살아왔고 한편으로는 한심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운이 안좋았네 실력이 부족했네 투덜거리기 앞서 나는 그다지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나라는 사람은 게으른 유전자를 타고나서 열심히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그동안 저는 욕심을 비우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지워나가왔기에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더욱 희박해진 상태입니다
어떡할까요. 조금 많은 시간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K 당신이라면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지도 궁금하네요.
어찌됐든 지금 당장의 저는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궁상이므로 한동안 제 별명은 '나태'로 지어두렵니다
'김나태씨'로 지내면서 앞으로의 삶을 곰곰히 그려보아야겠습니다.
그 어설픈 그림 속에서 이름을 지어보고 저의 미래가 살아갈 집도 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