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네 번째 밤
침대를 집착하는 남자
십수년간 언제 이런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싶은게 아니라 이런적이 없었지요.
제가 한 집에서 일년을 넘게 살다니요.
알림이 온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축하를 해준것도 아니었습니다. 작년 년말에는 계약을 갱신해야겠구나 하면서도 한 집에서 일년을 넘게 살게 되었단 자각이 없었고, 집주인에게 갱신여부를 일찌감치 알려둔 탓에 스리슬쩍 넘어가버린 1년째 되는 날은 어떤 하루 였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적기 위해 무슨 이야기를 전해줄까 고민을 하다보니 생각이 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옮겨볼까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동네가 맘에 들고 혼자 살기엔 충분히 넓은 집이었지만 혹시 조금 더 넓고 깔끔한 집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로 다른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가격 언저리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좋은 집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답니다.
항상 옮겨다니는 일이 당연했지 때문이었던걸까요. 집에 대한 애착이랄게 별로 없었습니다. 쉬고 싶은 공간이 필요하고 간절했어도 그것이 내가 잠자고 있는 집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좁고 답답한 방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날들이었습니다.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만 벗어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발버둥쳐야만 하는 공간. 좁다란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하는 누군가들이라면 아마 비슷한 감정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자그마한 창 마저 얽히고설킨 건물들에 가로막혀 하늘마저 잊고 살아가게 만드는 집이 가진 그늘의 무게만큼 가슴을 짖누르는 삶이랍니다.
적어도 집다운 집에서 살기 시작한 덕분일까요. '집에 가고 싶다'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나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한동안 제게 찾아왔던 지독하고 오랜 무기력증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도 적지 않은 이유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집에 대한 애착이 강렬해진만큼 집 안에서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해야할 일들이 한가득이라 적어도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기라도 해야하건만, 한발작 밖으로만 나가면 좋아라하는 풍경의 산책로가 있건만 침대의 따뜻함과 안락함은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오로지 침대에게만 집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작년 가을즈음 샀던 맘에 드는 촉감의 이불은 빼꼼히 내미는 발 한짝을 용서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겨울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작은 찜질기는 깊고 깊이 이불의 중심으로 저를 빨아들입니다.
두 명이 누워도 넉넉한 사이즈의 침대. 밝은 회색의 모달 재질로 만들어진 솜이불과 푹신한 베개. 나에게 적당히 맞춰지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찜질기. 반틈이지만 하늘이 보이는 창과 언제든 햇살을 막아주는 블라인드. 눈이 부신 밝은 천정등 대신 은은한 분위기로 반전시켜주는 침대 옆 책상의 전구색 스탠드 등기구.
의지와 상관없이 뛰는 심장과 내쉬는 숨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의미의 세계. 어둡고 긴 터널로 빠져드는 무의미로의 다이빙이 저를 생(生)으로부터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아주 달콤한 고요의 어둠이지요.
저도 살고 싶긴 한가봅니다
어둔 밤 길을 잃은 남자가 별을 찾아 기도하듯 침대 위 이불속에서 나를 밖으로 이끌어 내줄 별님을 남몰래 소망하고 있음을 조용히 흐르는 눈물로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온몸은 침대의 중심으로, 깊은 곳으로 파고 들고 있지만 제 간절한 눈빛만은 어딘가 별님에 다달아 반사된 별빛을 만나고 싶습니다
K
당신 삶의 빛은 무엇일까요. 그 옛날 제가 빛이 되어주긴 했었을까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별빛은 무엇일까요.
저 별은 나의별. 저 별은 너의 별.
저 넓은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있듯 당신과 나를 위해 반짝여줄 별들은 반드시 있을겁니다. 비록 서로의 별이 같은 별이 아니지만요. 결단코 가까지 있지 않을 수억광년 떨어진 별이겠지만요. 그럼에도 우리 모두 각자의 별빛을 만나러 부지런히 울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