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 번째 밤
위로는 어디에서 오나요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날이 갈 수록 아픈날이 늘어갑니다
쉽게 아프고 어렵게 낫습니다
최근 몇달간만 하더라도 큰 사고가 없었음에도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아프곤 했고, 몇번의 열병과 속병을 앓았습니다. 어리고 젊다고 할 만한 시절에는 짧으면 반나절, 길어야 하룻밤 자고 나면 나아버렸던 것들이라 약은 물론 병원은 쉬면 나아버릴 아픈 몸을 오히려 귀찮게 만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몸에서 '넌 이제 곧 아플예정이야.' 신호라도 살포시 보내는 낌새가 느껴지면 만사 제쳐두고 약부터 챙겨먹고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둡니다. 그만큼 한번 아파버린 몸이 쉽게 낫지 않음은 물론 아픔을 참고 버텨낼 기운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양이란 명목을 우겨넣은 불편한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뒤적뒤적 서랍을 뒤져 약을 찾아봅니다. 약을 올바로 구분하기 위해 단 한알의 알약이 남아있더라도 반드시 이름과 효능, 복용법이 함께 적힌 박스를 함께 보관하는 건 약에 의지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어서부터 쌓아온 자랑스러운 경험의 산물입니다. 덕분에 내가 아파하는 곳에 아주 적절한 약을 먹을 수 있는 것이구요
약을 먹고 땀으로 질어진 몸. 함께 절여진 이불의 눅눅함이 가득한 자그마한 세상.
열이 내리고 통증이 사라지며 나아가는 몸은 침대 옆 창밖 풍경을 이제야 눈에 담을 수 있도록 할 때에 문득 궁금해집니다.
'마음이 아플 땐 어떤 약을 먹어야 할까.'
위로는 어디에서 올까요. 위로를 만드는 약은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달달한 초콜릿. 언제도 좋은 치킨 한마리. 아주 매운 떡볶이?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가 떠오르네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터질것처럼 두근대는 심장으로 개운해지는 깊은 새벽의 달리기일지도 몰라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낯선 바다의 경치와 파도 소리 일지도 모르지요
몸도 마음도 얼마간의 시간을 버텨내면 낫게 된다는 건 압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을테구요.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약을 먹지요. 지금 아프니까요. 과거도 미래도 상관없는 지금이요.
저는 지금을 위로 받고 싶습니다. 지금의 아픔을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순간의 끊김없이 위로를 어디서 데려와야 하는지 찾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 삶의 원동력은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요.
의사가 없는 마음의 병은 이름이 없어서, 그렇기에 당연히 위로를 만드는 약의 이름도 없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중2병에 걸린 소년처럼 죽어야만 끝날 고통이라 생각한 적도 있고, 또 언제는 일에 미쳐 살아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만이 모든 것이라 믿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약의 이름이 되어줄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그렇습니다. 약이란건 어느 한 가지만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란것 정도는 알게되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고찰 한 스푼. 성공을 하겠다는 열망 한 스푼. 사랑은 그래도 조금더 많이해서 두 스푼. 그리고 잊었던 위로의 조각이 있을테고 앞으로 알게 될 새로운 위로의 반짝임이 있을테니 그것들도 한 스푼씩. 그렇게 약을 만들어야합니다.
K. 나는 아주아주 많은 약을 만들 생각입니다. 약을 만들어낼 조제법을 찾고 배워볼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약들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사실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런 약이 필요없는 사람이 되렵니다. 대신 제가 만들어낸 약을 마음이 아픈 내 사람들에게, 내 사랑에게 곱게 건내주렵니다.
K
약은 많이 만들어둘테니 살아가는 동안 위로가 필요한 날엔 제 이름을 불러보세요
그땐 우리가 사랑의 이름도, 우정의 이름도 아니겠으나 언젠가 소중했던 한번의 인연을 하얗게 불태운 소식이 될 수는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날엔 약을 건내드리러 찾아가겠습니다. 위로를 건내드리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