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를 만나면 화가 납니다

여든아홉 번째 밤

by 숨결
바보를 만나면 화가 납니다




안녕하세요 K

작년과는 달리 이제는 잔인하지 않은 5월입니다. 당신의 생일이 있는 달을 이제야 떠올리는 걸 보니 당신이 내게서 많이도 옅어졌음이 느껴집니다.


K.

이제는 곧 그만두려고 하고있긴하지만 저는 카페를 하는 사람입니다. 사업도 했었구요. 그래서 제 주변에는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큼 큰 성공을 이룬 사람도 많고 여전히 곤궁하고 피로한 삶의 연속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지요.


성공한 사람들과 이야기는 정말 즐겁습니다. 질투가 나긴 하지만서요.

그들은 항상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연구하며 그곳에서 나온 성과를 즐깁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답니다.

반면에 근근히 사업과 장사를 꾸려가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언제나 불평과 불만, 좌절이나 한탄이 주를 이룹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야하는지 모를 잡스럽고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 투성이입니다. 아니네요. 잡스럽고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가 '어쩜 이리 바보같을까.'싶을 정도로 틀리고 부족합니다.


"가게 장사가 안되서. 이름을 바꿔봐야겠어."


"상품 홍보가 안되네(홍보 아무것도 안했음)"


"나는 언제쯤 성공할까(자기계발 안함)"


"너도 어서 결혼해야지.(매일 가정문제로 상담함)"


MBTI로 사람 가려야 하는 이야기. 혈액형 이야기.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전하는 말도 안되는 정치이야기 등등...바로잡아 주려고 해도, 조언을 해주려고 해도 바뀌지 않을 사람이란 걸, 나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바꿀 능력이 없단걸 절실히도 알기에 그저 빙그레 웃고 말아버립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사람들을 깎아내고 새로운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벌려두며 조용하고 평온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왔습니다. 나쁜 사람은 당연하게 멀리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불편한 사람은 조용히 뒷걸음질쳐 떠나옵니다.

그렇게 앙상하게 좁아진 인간관계 안에서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인연들이 아직 남았습니다. 나는 그들을 바보라고 부릅니다.


나는 바보를 만나면 화가 납니다.

그들은 너무 순박하고 정이 깊어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욕심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손해를 사서 업어옵니다. 그리곤 혼자 눈물 짓습니다. 그리고는 또 괜찮다고 해맑게 웃습니다.

그들이 상처받는 모습에 내 맘이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속은 상하지만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바보가 바보인 것은 고작 지식과 행동의 부족함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보가 바보인 것은 그들이 바보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티는 노력은 평생을 하지만 나아가고 성장하는 노력에는 고집스럽게 인색하지요. 저는 여기서 화가납니다. 바보들은 아마도 평생을 바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뻔히 보이는 현실말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잔소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때문에 제 눈에 보이는 해결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아까워하는 시간을 허비해서라도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바보들은 '그런 방법이 있구나'하면서 그 방법을 왜 이용하질 않을까요. 왜 더 노력하고 더 알고자하지 않을까요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살아가기는 하는 인생. 행복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 맞는 일인데.

나는 왜 그리도 바보처럼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겠다고 아픈 마음을 떨쳐내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왔던 걸까요.


나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인 바보라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빙그레 웃던 표정의 의미를 알것 같습니다.

날 아껴주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보며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좋은 사람이라고 곁에 두긴 했는데 바보처럼 지난 그리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파서 끙끙 앓기만 하던 내 모습에 정말 화가 났겠습니다.


"그냥 그리워하면서 살래."


"앞으로 더 이상 사랑은 하지 않을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지금은 제가 보아도 바보 같지 아니할 수가 없는 말들이었네요. 그렇다고해서 저 말들을 후회한다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바보로 살기로 했던 나의 결심을 비웃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을 화나게 한 부분은 사과하고 전하고 싶습니다. 화가 난 사람들과 나의 맘이 같다면 그 사람들은 정말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화가 나게 만든 사람이지만 곁에 둘 수 밖에 없는 인연이라고 여겨준 것일테니까요.


당신이 옅어진 5월

저는 더 이상 나의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바보가 아니게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춰, 우리 함께 걸어가보자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어댈 수 있는 봄에 피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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