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결말을 연습합니다

여든여덟 번째 밤

by 숨결
아름다운 결말을 연습합니다





K. 오랜만입니다.

나는 변덕의 언덕을 넘어 또다시 허망의 평야에 다달아 평온해졌습니다.


이 백번의 편지들에 의미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나의 삶이 흘러가며 남겨진 흔하고 하찮은 발걸음에 뭘 그리 얽매이려 했던걸까요

어차피 닿지도 못할 내 목소리와 이 편지가 정말 당신에게 전해질거라 믿기라도 한것이었던걸까요


사실 최근 꿈에 당신이 자주 나옵니다

이제는 정말로 당신을 떠나보내려하는 저의 다짐의 끝자락을 잡아 끌며 마지막 거친 숨을 내쉬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행인 점은 예전처럼 꿈 속에서 당신을 만났다 하더라도 바닥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좌절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보며 '이제와서 왜?'라는 의문만이 가득합니다.


꿈 속에서의 당신은 여느때처럼 웃고 있었고, 토라지기도 했습니다. 그 얼굴들만이 기억납니다. 당신과 무엇을 했는지는 잠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꿈에 대한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처럼 사르르 흘러 날아가 버렸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은 그리움도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모래를 가득 담아 움켜진 주먹을 풀어내 바닥으로 흐르고 바람에 날아가버리는 모래가 되어 그 흔적만이 손바닥 위로 남아있습니다. 채 날아가지 못해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못한 너무 고운 모래와 모래가 머물렀던 바다의 채취가 아직 남아있지만, 저는 이제 탁탁 손을 털어 그 흔적까지도 다음으로 불어올 바람에 실려 떠나보낼 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당신이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묻지 않으렵니다.

당신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도, 소망하는 마음도 당신과 머물렀던 그곳에 고이 묻어두고 오렵니다.


백번의 편지도 이제 끝으로 향하고 있는 만큼 저는 이 편지들을 엮어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아팠고,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했고, 결국엔 당신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들을 모아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을 그리움을 증명하렵니다.


그 다음은 또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공허의 유산으로 남아버린 내 남은 일생의 새로운 종착역을 찾아서 내 가슴에 담아야 나는 또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 다음의 사랑일수도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겠지요


남은 편지들은 아마도 마지막까지 당신을 떨쳐낸 나의 평안과 안녕을 그리는 에필로그들로 적어내려가지 않을까요. 내심 또 다시 그리움이 쏟아져버릴까 두렵기도 하지만 남은 글을 마치게 된다면 그 역시도 너무 고와서 떨쳐내지 못한 흔적이었을 뿐이란걸 알게 될 것입니다.


K.

백번의 편지의 끝자락에 앞서 먼저 작별인사를 보냅니다.

그대여 안녕히.

사랑했고 그리워했으며 지워진 그대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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