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랑
삶이 내게 묻는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느닷없는 질문에
빨가진 얼굴을 쉽사리 무릎사이로 묻을 수도 없다
언제고 답하지 못하는 물음에
그래 너는 그렇게 배시시 웃고 말아버리지
나도 모르진 않아
너 또한 토라진 표정을 숨지긴 못하니 말이다
괜찮아
너는 나에게 슬픈 눈으로나마 웃음지며
아직일 뿐이야 속삭이고
나는 너에게 기약없는 약속이나마
감기약처럼 삼키며
널 사랑하게 될거야
널 사랑하고 싶어 말할테니까
drawing by Yoon
마음과의 만남
20대 시기의 많은 부분은 여행으로 채우곤 했었다.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기 보단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진 시간 중
'여행'의 카테고리에 담긴 내용이 상당부분이다.
대부분의 여행은 홀로 떠나는 여행이었고
사실상 나 스스로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길러준 부모님'같은 시간이다.
걷는 걸 좋아했다
'걷는다'보다는
한발작씩 걸으며 내 발끝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때로는 잔잔한 호수같이
때로는 폭풍우치는 파도같은 마음과 조우하는 시간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다
그 어린 젊은날에는
스스로를 더분히도 미워했었다
특별히 잘난 것 하나없이
그렇다고 특별히 잘나보겠다는 욕심도 없이 살아가는
길가의 풀뿌리와 별다를 것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그저 살아있음을 느껴보겠다는 원초적인 욕망만을 남겨두었다
'나는 불행해져야 한다.'
스스로의 명언이라며 되뇌이던 말로
가만히 놔두면 권태와 게으름에 젖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불행'이었기에
나의 20대는 언제나 혹사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여행이야 이루 말할 수 있을까
여름 날 뙤약볕을 30km씩 걷고
청바지에 점퍼하나 달랑 입고 폭설이 내린 지리산을 오르다
산장지기 아저씨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으며
알지도 못하는 길을 하염없이 걷다
죽을고비를 넘긴것이 열댓번은 넘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분과 나이에 따른 책임이 생겼고
이에 따라 시간과 일에 쫒겨
나는 '나'를 잊어갔다
누군들 그리 살지 않을까
나 또한 그리 살아야겠지
나를 잊어간 시간이 의미가 없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에서야 다시금 찾게 된 것은
허무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 자신 때문이었다
흘러가는데로 살아가는 도중
길 잃은 아이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은 공허함
공허함을 뒤따르는 불안감이 나타났다
차오르는 눈물을 틀어막고
울먹임을 삼키며
서둘러 나는 나를 찾았다
잊고 있던 '나'를 찾는 내게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