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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_03

고양이야 고양이야 나의 고양이야

by 숨결




훗날 죽어

저승길로 가게되면

먼저 떠난 반려동물이 가장먼저 마중을 나온다고 누군가 말했다


너는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렸구나

너와 나의 연 이란

이토록 깊고 긴 여정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뭉클한 사랑의 절정일 줄이야


그래

나는 평생을 너에 대한 연민으로

너는 평생을 나에 대한 기다림으로 살아가는구나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애달픈 사랑으로

너와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너를 내 품에 고이 안아

너와 나의 체온을 느끼고 심장 고동소리 감상하는 순간을 만끽하는구나


그랬지

열두시가 얼핏 넘은 어느 저녁날

지친 몸과 무너진 가슴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너는 지금처럼

'왔어?' 라는 표정으로

'왜 이제 왔어'라는 울음으로 반겨줬었지


나의 이십대의 끝에서

마음의 커다란 구멍을 메우던 너의 사랑은

나의 삶의 끝 뒤안길에서조차도

콘크리트 옹벽사이 피어난 노란 민들레처럼

나의 갈라짐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랑이구나




< 진 GIN >






너무나 가볍게
커다란 상실을 만들어버렸다




'너의 이름은 진 이야'


14년 여름의 초입에 후배녀석 하나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한마리 분양을 해주겠다고 했다. 길고양이가 집에 제멋대로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다 새끼까지 배어온터라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작은 사무실을 임대받아 꾸미는 중이기에 키울 공간도 마련되었겠다 반려동물을 키우는건 아주 어릴적부터 품어온 소망이었기에 못이기는 척 그러자고 해버렸다.


고등어 무늬의 작은 수컷 새끼고양이

이름은 진 이라고 지었다. 이 한마리를 시작으로 나의 공간도 안정되어 갈 것이고 그만큼 많은 아이들을 데려오거나 이녀석의 자식들이 생길수도 있겠다 싶은 욕심에, 후에 술 이름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만들어 가겠다는 허황된 꿈이었다.

'GIN. WINE. RUM. WHISKY...'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쑥스러운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전 여자친구의 뒷 이름을 따와 당시의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려던 욕심도 한몫을 했다.


<안녕 나의 작은 고양이야>


'같잖은 책임감'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각오는 충분하지 못했었나보다.


당시에는 새내기 사업가가 잘 커가고 있던 단계였다. 보금자리라고 생각했던 사무실은 나의 개인 공간이 아닌 공동으로 쓰는 대형 오피스로 옮기게 된터라 결국 버려질 수 밖에 없었다.

옮기기 이전의 사무실이 있던 인천은 인맥 인프라의 중심인 학교가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연고지가 필요할거라 생각했기에 혼자 살기 넉넉한 평수의 옥탑방으로 방을 하나 잡았고, 나의 고양이도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사무실은 안산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고 이따금 출장이나 교육으로 인하여 며칠씩 떠나있어야했다.

나의 고양이는 그렇게 외로워져갔다. 나의 사랑과 나의 책임이 필요한 아이는 허울좋은 주인의식의 피해자가 되어 버려져갔다.

이따금 들어와 사료를 한가득 부어주고, 비어버린 사료만큼의 배설물을 치워주곤 또다시 사라지길 반복하는 못난 주인. 하지만 의지할 곳은 오로지 저 못난 주인 하나뿐이다. 슬픈 애증.


가끔 진이가 생각날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고양이의 수명을 생각한다면 녀석은 나에겐 사흘이라는 시간이 몇 주 또는 몇 달처럼 느껴졌을텐데, 그 긴 시간동안 어떤 감정이었을까.

좁다란 옥탑방에 갇혀, 한겨울 옥탑방의 차가운 외풍을 피해 이불속에 파묻혀 웅크리고 누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그저 외로운 기다림이 데려온 쓸쓸함에 젖어있었을까.

네가 너였다면...얼마나 가슴 저리게 슬펐을까.


그래서 네가 생각날때면 눈물이 나고는 한다.




<그래도 사랑했을까 너는. 나를>


<너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너의 세상이란'



너를 그렇게 내버려둔지 일년이 지나기 전에 나는 또다시 사무실을 옮겼다.

변두리지만 수도권 구석진 곳에서 서울 안으로 입성하는 나름의 감격적인 시기였다.

너를 도저히 버려둘수가 없어 집과 사무실을 함께 쓸 수 있도록 복층 오피스텔을 구했다.


고양이인 너는 일을 하는데에는 몹시나 귀찮고 방해되는 존재였지만, 지난 시간동안의 미안함에 나는 너에게 함부로 화를 낼 수 없었다.


네가 어떤일인지 알지도 모를 발정기 시기에 우리는 참 많이도 싸웠다.

네가 왜 그러는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몰랐다. 너는 짜증나도록 나를 귀찮게 만들었고 너는 나의 짜증을 받아내야 했다. 연인도 아니건만 싸우고 도망가고 화해하길 반복했다 우리는.


어느날 깊은 새벽. 네가 내 얼굴에 오줌을 뿌림으로서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고 너는 나의 화를 피해 도망갔다. 세수를 하며 뭔가 잘못됐음을 그제서야 깨닫고 다음날 곧바로 너의 중성화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하던 날의 너야. 미안했어>



생각이 더 많아졌다.

나는 아직도 너무나 모르는구나. 괜찮은걸까 생각했다.

너를 수술시키는것 또한 나와 함께하기 위해, 너를 나에게 맞추기 위해

수술이란걸 해야하는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너는 과연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걸까


안약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지만

너의 눈에 맺힌 물방울에

악몽에 시달린 어스름 새벽녘의 마음처럼

심히 괴로움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일평생을 너와 함께 하더라도

나는 너의 세상을 알 수 있을까



너의 세상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지

절박한 마음으로 너에게 묻고 싶다




<마지막까지 우리 괜찮았지?>



'책임이여 안녕. 너의 세상이여 안녕'



서울의 변두리에서 나는 강남으로 또다시 사무실을 옮기게 되었다.

무리한 확장으로 사무실은 얻었지만 나는 집을 잃었다.


곧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잠깐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게 너를 떠나게 만드는 일이 될거라곤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은 너무나 가벼웠고

너와의 이별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적막한 무거움이 되었다



친구의 여자친구. 지금은 한참 이전의 여자친구는 집에서 두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간의 몇번의 만남으로 안면을 익힌 나는 당신에게 진이를 부탁했다.

진이에게 외롭지 않을 친구가 생길 수 있었고, 나보다 따듯하고 소중하게 돌보아줄 사람이었으니까.


나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리한 확장으로 오히려 사정은 나빠지기만 했다.

나를 위한 욕심을 모두 버렸고 너를 데려올 일말의 가능성도 함께 버렸다

더불어, 내 친구는 진이를 데려간 당신과 헤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생각한다

잊혀지지 못할 상처와 슬픔일지라도 너는 아마도 지금이 행복할 거라 생각된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작은 고양이 한마리조차 전전긍긍하며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비루한 처지이니까


불안한 나의 옆에서 외로워야할 너를 지켜볼 자신보다

보이지 않는곳에서 행복히 살아갈 너를 그리는 것이 낫다


나는 너의 세상을 모르기에

이기적인 마음으로 너의 세상을 마음대로 상상한다.

네가 나의 세상을 떠나 행복하리라 믿어야만

이 슬픈 마음에도 눈물을 감히 흘리지는 못할테니 말이다.






<수박이입니다>



수박이는 동거인이 데려온 암컷 고양이다.

애초에 데러오겠다고 했을때 불편한 기색을 많이 표했다.

나와 같이 슬퍼지게 될까봐.

서로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와 살아간다는 것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란걸

깨닫기 어려우니까


반쯤 막무가내로 데려온 이녀석을 돌보고 있을 때마다 진이가 생각난다.

너와 닮은 이 아이. 너의 성장의 시간과 닮은 이 아이.

지금의 아이에게 해주는 사랑만큼 너에게 해주지 못했다는 슬픈 아쉬움


동거인은 사실 내가 했던 이기적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모자람을 나로서 조금이나마 채워보려 애쓰지만

마음은 자꾸만 이녀석을 밀어낸다.




두번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이기적 생각으로 나와는 다른 세상을 함부로 품지 않겠다 다짐했었고

또한번 마음에 무거운 아픔을 쌓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죽고 난 후에 나타나지 않을 너에게 실망할까 두려우니까






나의 세상이 너에게 상처였을까 겁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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