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낱 관계'였을 뿐이었을까
서글픈 생각이 든다
너희들과의 시간과 추억은 지금처럼 밖에 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잉여로운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한 '한낱 관계'에 지나지 않았을까
갈라진 한 사람으로서의 길과
엇갈린 마음으로의 마주함으로
너희들과 나는 '우리'라는 이름에서 이미 먼 길을 떠나와 버렸다
<au revoir>
못난 놈들은
이별마저 못나다
친구들이 있었다.
슬프게도 친구들이 '있었다'라는 표현을 써야하는 비오는 오늘
나와 더불어 나의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상당히 '잉여롭고', '딱히 쓸모가 없었다'
돈이 많지도 않았고, 대외적으로 놀이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지 않았으며
외모는 특출나게 못생긴 축에 속하는 무리였다. 그나마의 가능성인 학업성적도 '나쁨'에 속했다
내 못난 친구들은 어떠한 진취적 목적이나 각자의 잇속을 위해 만나지 못했다
주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목표치가 달라짐을 알았다면 좋지 못한 선택이다
우리는 잉여로움 속에 허기짐과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못난 인생을 살아갈 여정의 시작점에서 만난 동류의 궁상들이었다
이 못난 '우리'가 만들어진데에는
나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점에서 '못난 놈들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가족으로 부터의 구속과 압박에서는 벗어났으나
난생 처음 느껴보닌 혼자라는 외로움은 주변에서 자취를 하는 얼마되지 않은 인연들을 낯짝 두껍게도 무작청 찾아가게 만들었고, 속칭 '자취팸'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고 했던가
어지간히도 못난 놈들이라 만나기만 하면 즐겁다고 붙어있어
각자의 못남은 시너지 효과를 얻어 상당한 못남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아직도 이해를 할 수 없는것이
각자의 자취방을 가진 놈들이 한명의 방에 모여서 이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방이 좁아 등을 바닥에 늬일 수도 없어서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다닫다닥 붙어 자는 꼴은 무엇인가
신발을 신고 나가서 뛰어가면 30초 거리에 홀로 따뜻하게 편히 누워잘 수 있는 침대가 있건만!
그 다섯의 적나라한 일상을 단편적으로 살펴보면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 한시 쯤 하나 둘 잠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다 모두 일어날 쯤엔
중국요리집에 전화를 해 '무려 한달 동안' 같은 메뉴를 시켜 해장을 한다.
밥을 먹고는 다섯의 궁상들이 느릿느릿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에 한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남자 쩐내가 가득한 이불이라도 이불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음때문이다.
오후 중에도 딱히 약속이 없는 날이면 동아리방과 피시방, 노래방, 오락실 등등을 전전하고
누구든지 불러내 할짓없는 지금을 함께 보내려 애썼다.
저녁이 되면 그렇게 불러낸 누구든지들을 집에 가지 못하게 막고는 지금 가진 돈으로 최대한 많이 먹을 수 있는 술집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1차, 2차, 3차 4차...일반적으로 차수는 크게 개의치 않아했기에 얼마나 마시고 놀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갈 수록 결국 우리는 '우리'만 남는다.
아침해가 뜨기 직전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해장겸 아침식사를 하고 또다시 냄새나는 좁은 방에 모여
세상 가장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해를 바라보며 잠이 든다.
인생의 낭비 중 가장 큰 사례로 꼽히는 시기에 같은 모습을 하던 놈들. '우리'
지금의 우리는 '우리'라고 부를 만남조차 없다.
절반은 어찌 살아가는지 연락조차 없는 끊어진 인연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못난 20대들이 못난 30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책임지기 위해 그 옛날의 못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각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우리들의 끊어짐은
어쩜 이리도 끊어짐조차 못날 수가 있는지 한탄스럽기 그지 없다.
멋들어지게 훗날을 기약하거나
이따금 추억을 곱씹으며 술한잔 기울일 남자의 일생의 일부를 채워줄 법도 한데
이 못난것들은 스러져가는 인연을 붙잡을 줄도 모른채
못나게도 서로를 떠나보냈고 떠나보내고 있다
실은 아쉬움이다
아무리 못난 놈들의 못난 모습이었을지라도
우리는 그저 '한낱 관계'에 지나지는 않았었다 믿고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그때가
채워짐이 가장 가득할 때였던 것을 분명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저 지금의 우리들은 그때의 모습처럼 그럴 수 없음이 아쉬움이다.
지금에서 그때처럼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을 뿐더러
시간의 흘러감조차 익숙해진 삼십대는 십분의 자투리 시간마저도 아까워 가슴 아프니까
어린 시절의 순백의 순진함을 추억하듯
젊은 시절의 조금은 더럽혀지고 지저분해진 청춘을 추억하며
오늘만이라도 '우리'를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