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창업에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딴걸 왜?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하다보면 이따금씩 '창업스토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창업이 동기 항목이 될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스토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취업을 위해 자소서를 쓸 때도 가장 난해한 항목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업을 하는데 무슨 목적이 따로 필요한가. 돈벌려고 하는거지. 당연하다.
허나 쓸데없다고 보여지는 '스토리'라는 것은 창업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어서 마음가짐을 잡아두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라는 육하원칙에 의해 이야기를 해야하는 기초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립된 내용은 향후의 계획을 세워나가는 주요한 기준으로도 적용된다. (쉽게 풀어쓰기 위해 '스토리'란 용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내용은 '비지니스 접근법'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고 '나만의 컨셉'을 만드는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사업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이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정리되지 못한 초심은 잊혀지기 쉽기 때문이다. 사업을 운영해 나감에 있어서 계획은 언제나 수정될 수 있고, 상황에 맞게 수정되어야만 하지만 기준이 없는 수정은 땜질에 땜질을 더해나가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땜질에 가려져 잊어버리고 만다.
왜?라는 물음
나의 창업 스토리를 만들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일단 물어보자. 나는 '왜' 이 사업을, 이 아이템을 하게 되었는가.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아이템이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어서? 아주 좋다. 이와 같은 예시에서 '시스템이 갖춰졌다'라는건 이미 스토리를 갖춘 것을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란것 정도는 알고 있자. 그정도는 되니까 시스템까지 갖춰진거다. 이러니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육하원칙으로 따져서 천천히 생각해보면 (누가-언제-무엇을-어떻게)까지는 (내가 지금 이러한 아이템을 이렇게 사용하도록)으로 쉽게 요약된다. 아이템까지는 이미 선정되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는 어떻게 하지? 지금 우리는 돈을 벌겠다라는 '왜?'가 아니라 돈을 벌기위한 '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왜'라는 것에는 사업의 기반이 될 '고객의 니즈'가 포함되어 있다.
고객의 니즈 그리고 초심과 컨셉
화창한 어느 날 연인과 번화가로 데이트를 나갔다. 점심을 먹고 영화한편 본 다음 분위기 좋은 카페로 가는 단순한 데이트 코스인데 막상 메뉴를 정하고 가게를 찾으려니 어디로 가야할지 당췌 감이 잡히질 않는다. 네이버에 검색을 하니 딱 봐도 광고.광고.광고.... 이미 여러번 블로거들에게 낚인터라 되려 더 발길이 가지 않는다. 결국 프렌차이즈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날이 더우니 어서 카페로 들어가야 하는데 유명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은 자리가 없다. 데이트 나온 겸 뭔가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싶은데 결국 의존할 건 블로그 밖에 없다. 더운 날씨덕에 영화관 건물 안에서 선채로 한참을 검색한 후에야 갈 곳을 정해본다. 집에 돌아오니 항상 이런식이었던것 같다. 데이트 할때마다 깔끔하게 선정된 코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니즈'가 보인다. '데이트에 최적화된 맛집 어플'
이 니즈가 나만의 불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데이트를 즐기는 대부분이 연인들이 겪는 불편이라면 충분히 '고객의 니즈가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깊에 들어가서 '데이트에 최적화된' 부분은 하나의 컨셉이 된다. 단순히 맛집 어플을 만들겠다고 '모든 식당을 담아보겠어'라고 했다간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홍수로 치달아 또다른 불편이 될테다. 여기서 나의 컨셉이 '데이트에 최적화된'이란 것이 니즈이고 컨셉임을 이제 충분히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때때로 반드시 상기시켜야 한다.
당신은 분명이 '데이트 맛집 어플'을 개발/운영하면서 좀 더 많은 수익을 향해 달려나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인 더 많은 제휴점들의 등록을 추진한다. 어느정도 유명한 앱이 되다보니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등록을 원하는 가게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아차'하겠지. 수익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서 제휴점을 늘리려니 블로그처럼 온갖 맛집이 넘쳐가는 분위기가 될테고 안하자니 당장 눈앞의 수익을 버려야한다. 이 난관을 타계하기 위해 팀원들과 회의를 진행하며 온갖 의견을 취합해 본다. 온갖 의견이 나왔으니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한다.
떠올리자. 나는 '데이트를 최적화된' 어플을 만들고 있다는걸.
나는 제휴점을 늘리는것을 과감히 포기한다. 대신에 '데이트 맛집'이 아닌 '데이트 놀거리' 카테고리를 생성했다. 새롭게 영업을 뛰어야 하고 마케팅에 들어갈 비용도 늘어났지만 나는 '데이트 관련 앱'에서 더 큰 위치를 확보하게 될 수 있다.
사업을 하다보면 눈앞의 이익이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장 보이는 방향으로 뛰쳐나가기 쉽다. 사업의 결과야 인생처럼 답이 어디있겠냐만 사업에도 '정도(正道)'라는 것이 있음을 기억하고 공식이란것이 존재함을 기억하자. 특별한 목적이나 신념이 없는 이상 제발 공식을 따라라. 상황판단 못하고 애처럼 굴지 않도록.
만일 당장의 이익을 위해 제휴점을 늘리게 되었다면 이 데이트앱은 넘쳐나는 정보로 사용자의 혼란을 일으키고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되었을 것이다. 떨어진 신뢰도로 제휴점과 사용자는 줄어들고 맛집으로 추천하기 어려운 제휴점까지 무조건적으로 가입시키겠지.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고 매출은 떨어져나가겠지. 망하겠지.
이야기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원론적인 '스토리'의 가치를 따져보았으니 좀 가벼운 의미도 건드려보자.
사업을 운영함에 있어 '스토리'는 하나의 큰 마케팅 무기로도 사용된다. 사람들은 특정한 아이템을 기억하게 될 때 '단순한 기능적 키워드'보다 '재밌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더욱 선호한다. TV나 자서전따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들어왔고 거기에 엄청난 호응을 해주며 살아가고 있다. 한창 유행한 스티븐잡스 패션처럼 성공한 사람의 옷차림까지 따라하는 판국이다....
그들은 이미 성공했으니 스토리가 필요한거 아니겠냐고? 아니지.
당신은 창업을 하면서 주변에 수많은 부탁, 협상, 회유 등등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따라서는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의 온정으로서도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당신이 가져야할 '스토리'는 논리적 합리성과 감정적 호소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기도하다. (그냥 이 사업이 왜 성공할만한가, 다른 이들을 얼마나 설득 시킬만한가와 내가 이만큼 큰 꿈과 역경을 이겨냈다 따위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는거다.)
당신은 당신의 사업고 아이템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만한 인간적인 호소가 있어야 재미없는 사업얘기 앞에 사람들을 붙잡아 두지 않겠는가.
조금은 편협한 관점일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창업 프레젠테이션 경연이나 창업관련 강연 등을 가보면 사업의 내용에 앞서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고, 이렇게 재밌게 살아봤고, 이렇게 성공도 해봤었습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시작에 두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우리네들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의 바탕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져보고 싶어함이고 그저그런 사람이라면 이야기조차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