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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21. 2022

나는 기다립니다

표영민 글/ 장산 그림/ 길벗어린이

낯선 나라에서 신혼을 시작한 나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남의 나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편 퇴근만을 바라보는 나에게 봉선이가 왔다. 봉선이와 지낸 지 일 년 즈음 지나 아이가 들어섰다. 몇몇 사람들은 임산부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좋지 않다며, 누구에게 주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아이가 태어났다. 봉선이와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가는 날이면 몇몇의 사람들은 갓난아이가 있는 곳에 개를 함께 두는 것이 아니라며 키울 사람 있음 개를 주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아이가 자라며 봉선이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든 봉선이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피부병이 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우울증이라 했다. 봉선이에게 관심과 친구가 필요하다 했다. 우리는 봉선이를 바라보는 시간을 늘리고, 식구를 늘이기로 했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깨비를 만났다. 봉선이보다 한참 작은 덩치의 깨비는 나이 든 봉선이에게 기죽지 않고 들이대기 바쁘다. 봉선이는 그런 깨비가 싫지 않은 눈치다. 봉선이의 털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으며, 퍼질러 잠만 자던 시간보다 깨비와 뒹구는 시간이 많아졌다. 몇몇 사람들은 말했다. 무슨 강아지를 두 마리나 키우냐며, 차라리 아이를 하나 더 놓으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오랫동안의 남의 나라 살이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다섯 식구의 비행 준비를 했다. 비행하기 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나이 많은 개까지 데리고 먼 길을 가냐며, 버리고 가라 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먼 길 갈 때 귀찮으면 늙은 부모 버리고 가냐고, 당신은 필요 없을 때 자식 버리냐며 묻지 않은 충고는 해주지 않아도 된다 말했다.


의도치 않게 펼쳐 읽은 <나를 기다립니다>란 그림책이 잊고 있던 그들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웃어넘긴 오랜 시간들을 후회한다.

당연한 듯하는 말이

당연한 듯하는 생각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진작 말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서 한국의 긴 겨울을 버티고,

봄을 맞이하는 봉선이와 깨비가 함께 함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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