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그리고 골목길

2장 봄-2

by 수미

아이는 아빠의 다리를 부여잡고 놀아달라 매달린다. 이제는 자기가 싫어졌냐며 생떼를 쓰기도, 못 자게 할 거라며 펼쳐 놓은 이불을 접어버리기도 한다.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빠가 영 못마땅한 아이를 달래고 남편은 안방 문을 살며시 닫는다. 아이는 닫힌 문을 보며, 아빠 미워를 연신 외치더니 자기방으로 휙 하고 들어간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예전 직장들에 비해 주어진 휴가나 월차를 쓸 때 상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며, 제대로 된 수당 없이 주말이며 근무 외 시간까지 불려가 일할 필요 없으니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많아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새벽 근무가 주어지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기가 그리 쉽진 않았다. 선배들은 조금 더 적응되면 새벽 근무도 그리 나쁘지 않다 했다지만, 밤낮 바뀐 생활을 막 시작한 남편은 뒤바뀐 취침 시간에 적응하느라 낮에는 오지 않는 잠을 자려 애쓰고, 밤에는 쏟아지는 잠을 밀쳐내느라 용을 쓰고 있었다.

새벽 청소를 나간 남편이 하는 일은 골목 사이 내어놓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다. 쓰레기차가 들어가는 곳은 차량 뒤에 매달려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시 매달리기를 반복하면 끝난다. 하지만 좁은 골목 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새벽 1시 즈음에 출근해 사전 작업을 해 두어야 쓰레기차에 담아 갈 수 있다. 사전 작업이란 골목을 누빌 수 있는 작은 용달차와 2인 1조가 된 청소부들이 골목골목을 누비고, 이 작은 용달차조차 들어갈 수 없는 길은 일일이 걸어 들어가 쓰레기들을 수거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선배 청소부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어카를 직접 끌고 들어가 한가득 실은 쓰레기를 큰길까지 끌고 나왔어야 했다며, 그나마 용달차를 사용하는 지금이 호사를 누리는 일이라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했다.

퇴근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인 남편이 산책을 하자 했다. 그러마 하고 따라나간 산책길, 남편은 평상시 가던 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로 나를 이끈다. 어디 어스름한데 가서 입 맞출 나이도 지났건만 왜 자꾸 이상한 길로 돌아가냐니 이곳이 자기가 새벽 청소하러 다니는 골목이라며 낮에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한다. 마침 봄비도 부슬부슬 내려 우산까지 펼쳐들고 들어선 골목길은 커다란 우산을 활짝 펼치기도 민망할 만큼 좁은 골목이다. 내리는 봄비에 접어 쓰듯 우산을 들고 걸어들어간 골목길에는 녹슨 철대문 앞 하얀 연탄재들이 놓여있다. 밤손님 대비한 콘크리트 담벼락 위 깨어진 병조각들도 보이고, 어느 솜씨 좋은 예술가가 그려놓은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며, 누군가에는 지친 몸을 누이는 안식처이며, 누군가에게는 산책길에 마주치는 새로운 공간의 발견인 자그마한 골목길, 그 길을 내리는 봄비와 함께 걸어본다.


164760043241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