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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22. 2022

중고책의 발견

셜록이 되어보다.

아이는 긴박하게 나를 부른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젖은 고무장갑의 물 뚝뚝 흘리며 쫓어들어간 방, 숨넘어갈 듯 부르던 목소리와 달리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한 손에 종이 조각 흔들며 더 가까이 오라 재촉한다. 영수증이다. 어떤 이가 향 좋은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망고 요구르트 스무디를 먹었다는 증거가 팍 찍힌 카페 영수증이다.


집 근처 중고 서점은 제법 규모 있어 원하는 중고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도, 다 읽은 책을 팔 수도 있다. 그 옆을 지키는 버터 냄새 넘치는 빵집은 배를 채우기 금상첨화며, 길가에 포진한 길고양이들과의 눈 맞춤하기 쉬운 이 길은 아이와 내가 애정 하는 장소이다. 점심을 때우고 빵빵해진 배도 꺼줄 겸 집 앞 중고서점에 들러보기로 했다. 넓은 서점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잡은 아이와 나는 다 읽은 책들을 팔고 받은 돈으로 중고책을 구입했다. 배는 이미 불렀지만 고소한 냄새에 끌려 들어간 서점 옆 빵집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꽉 찬 소라빵도 사고, 보리차 냄새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잔 시켜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밀린 설거지를 하는 동안 사 온 책을 펼쳐보던 아이는 책 사이에 끼워진 영수증 한 장을 발견했다. 우리가 책을 사고 받은 영수증인 줄 알고 내게 전해주려 하다, 영수증 속 내용이 그게 아님을 알고 찬찬히 보던 중 호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아이는 나를 부르더니 발견한 영수증을 보며 이 책의 예전 주인을 추리해 보자 했다.


첫 번째

주소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카페이니, 이 책의 주인은 경기도 사람이다.

두 번째

작년 일월 오전에 시간이 찍혀 있으니 아마, 방학기간 중 아이가 읽으라고 사 준 책일 것이다.

세 번째

엄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아이는 분명 달콤한 망고 요구르트 스무디를 마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도 나랑 같이 서점에 들를 때면 아메리카노를 사고 나에게 망고 스무디를 사주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음료 가격이 저렴한 걸로 봐서 우리처럼 포장 판매하는 카페에서 구입한 음료일 것이다. 그러니 책 주인의 집과 가까운 카페일 것이다.

다섯 번째

초등 고학년이 읽는 책이니 아마 이 아이도 나랑 같은 나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세 여자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책이니 이 책의 주인도 여자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 추리를 맞힌 아이는 영수증에 찍힌 주소의 카페에 이 책을 들고 가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추리가 맞는지 책의 주인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만약에 부천에 갈 일이 생긴다면 이 카페를 찾아가 보자 했다. 중고책 사이 끼워진 한 장의 영수증으로 이어진 예전 책 주인을 상상하는 시간은 새로운 중고책의 발견이었다. 이제 중고서점에 간다면 책 속 내용보다 예전 책 주인의 손길을 찾는 일에 더 집중할 아이를 한동안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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